민선 5기를 이끌어온 강운태 광주시장이 지난달 30일 임기를 마감한 직후 장문의 작별편지를 띄워 광주시민들과 공무원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딱딱하던 평소 이미지와 달리 훈훈한 감동을 남겼다는 예찬론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이임식에서 ‘회자정리(會者定離)’보다는 ‘거자필반’(去者必返)을 강조한 강 시장이 마지막까지 시정 성과를 홍보하는데 열을 올렸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강 시장이 직접 작성한 이 편지에는 그동안 시정의 최종 책임자로서 일관되게 유지하던 권위와 형식논리보다는 평범한 인간으로서의 고뇌가 촘촘히 담겨 있다.
강 시장은 ‘시민 여러분 감사합니다.’라는 제목의 편지에서 “민선 5기 4년을 마치고 작별인사를 드려야 할 시간”이라며 “고향 광주를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는 것이 축복”이라고 서두를 꺼냈다. 전남 화순 태생이지만 대부분 학창시절을 광주에서 지낸 그는 초등학교와 중학교 재학과정 등 자신의 어린시절을 먼저 되돌아봤다.
“공직생활을 하시던 아버지를 따라 초등학교만 4번 전학을 했고 마지막으로 옮긴 곳이 수창초등학교였습니다. 그렇게 광주와 처음 인연을 맺었고 중학교 때는 지금은 없어진 경양방죽을 바라보며 매일 학교를 오갔습니다. 그 아름다운 풍광을 보며 화가를 꿈꾸기도 했고, 농민을 위해 경양방죽을 만든 세종대왕을 본 받아 국가와 사회를 위해 훌륭한 사람이 되겠다는 꿈을 키우기도 했습니다.”
강 시장은 ‘광주의 고난’과 지금까지 공직자로서 겪었던 불공평한 인사문제 등에 대해 말을 이어갔다. “제가 공직자로서 사회생활을 시작할 즈음 군사정권은 정권유지에 지역감정을 이용했고, 전라도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갖가지 불이익을 받아야 했습니다. 80년 5월에 겪은 희생과 분노는 광주와 광주시민들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습니다. 비록 광주를 떠나 있었지만, 그런 광주를 위해 일하리라는 꿈을 늘 품고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주도한 민선 5기 4년 임기동안의 공적과 과오에 관해서도 비교적 솔직하게 털어놓고 시 살림을 꾸려온 심경을 애잔하게 술회했다.
“지난 4년, 아쉬움도 있고, 후회스러운 점도 없지 않으나, 하루도 허투루 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왔다는 점만은 스스로 낮은 점수를 주고 싶지 않습니다. 4년 내내 광주발전만을 생각하는 고민의 날이었고, 행동의 날이었습니다. 그리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간혹 업무와 관련해 제게 질책을 받는 공직자가 있다면, 광주발전을 위한 서두름에서 나온 것임을 너그럽게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강 시장은 중앙정부와의 불편했던 관계도 주저 없이 언급했다. 민선 5기의 성과도 자평했다.
“매년 부르던 ‘임을 위한 행진곡’도 부르지 못하게 합니다. 국회의결까지 이끌어 낸 지금도 5·18지정곡 지정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세계수영선수권대회 유치 때는 이미 몇 달 전에 드러난 담당자의 조그만 실수를 유치도시를 결정하는 날 마치 큰 문제가 있는 것처럼 왜곡해서 터뜨리는 유치방해공작을 펴기도 했습니다. 내년 유니버스아드 남북한 단일팀 구성을 위한 북한과의 본격적인 협상도 아직 허락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5·18기록물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했고, 유니버시아드대회 선수촌을 재개발 방식으로 만들었고, 새 야구장을 건설했고, 무등산을 국립공원으로 지정했고, 전국에서 가장 투명한 공사 입찰 제도를 만들었습니다.”
강 시장은 그 결과 광주의 수출증가율이 전국 특·광역시 가운데 1위를 차지했고 취업자 수 증가율, 광공업생산 증가율이 가장 높았다고 자부했다. 광주를 상징하는 MIG(Made In Gwangju) 상표 출원과 평동사격장 이전 등 다른 성과까지 일일이 열거한 강 시장은 향후 광주지역 공무원과 시민들이 대처해야 할 현안에 대한 당부도 잊지 않았다.
“지난 4년 우리가 이룩한 일도 많지만, 앞으로 해야 할 일도 많습니다. 조금만 더 노력하면 빛고을 광주는 그동안 걸어 온 가시밭길을 지나 모든 시민이 행복한, 아름다운 공동체로 굳건히 자리 잡게 될 것입니다. 먼저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을 정부가 운영하도록 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막대한 투자비가 들어가는 콘텐츠 제작에 전당의 성패가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부도덕한 자본이 자기 이익만 채우고 있는 제2순환도로를 시민의 것으로 되찾아 오는 일도 꼭 마무리 지어야 합니다. 광주의 자존심과 1조원 상당의 시민 혈세가 걸려 있는 과제입니다. KTX 개통도 단순한 교통시간의 단축이 아니라 수도권의 사람과 자본, 기업체가 광주로 몰려오는 통로가 되도록, 준비에 소홀함이 없어야 합니다. 유니버시아드 남북단일팀과 판문점 성화 봉송을 꼭 성사시켜, 세계 청년들의 축제가 남북한 화합의 장이 되고, 평화도시 광주의 이미지를 세계에 확신시키는 계기가 되도록 해야 합니다. 자동차 생산 100만 도시의 과제는 치밀한 계획과 정성을 다해 반드시 이루어내야 합니다.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무등산의 군사시설을 비롯해서 군비행장과 탄약고, 평동사격장과 31사단 등 군 시설을 이전하는 일도 광주의 발전을 위해 필요한 일입니다.”
16절지 4장 분량의 편지는 시장직을 물러나는 아쉬움과 광주에 대한 ‘무한애정’ 고백으로 끝을 맺었다. ‘죽는날까지…’라는 편지의 후반부 대목에서는 비장함이 묻어난다.
“시민의 결정에 따라 이제 저는 광주시장직을 물러나지만, 남아 있는 공직자 여러분이 민선 6시 윤장현 광주시장을 모시고, 광주공동체를 위한 과업을 하나하나 이루어 주시리라 믿습니다. 죽는 날까지 민주인권평화의 도시, 풍요로운 행복공동체 광주를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강 시장의 편지가 2일 오후 공무원 자택 등에 우편으로 도착하자 여러 반응이 쏟아졌다.
시청 4급 공무원 김모(54)씨는 “평소 모든 업무에 완벽을 추구하던 강 시장과 딱 어울리는 작별편지로 느껴졌다”며 “지방선거에서 패한 아쉬움이 진하게 드러난 것 같아 무척 안쓰러웠다”고 말했다.
다른 간부 공무원 이모(58)씨는 “시장실에서 불호령이나 야단을 맞고 서운할 때도 적지 않았는데 돌이켜보니 시정을 잘 꾸리려던 강 시장의 의욕 때문이었던 것 같다”며 “편지를 손에 쥐고 섭섭했던 기억이 눈 녹듯이 사라졌다”고 고마워했다.
한 시민단체 대표는 “축소판 자서전처럼 축약시켜 쓴 편지를 단숨에 읽어내려 갔다”며 “상투적 작별편지보다 진심이 듬뿍 담겨 있어 평생 잊지 못할 것”이라고 촌평했다.
1995년 민선 단체장을 직접선거로 선출한 지방자치제가 출범한 이후 민선5기가 이어져오는 동안 광주시장의 이 같은 작별편지는 처음인 것으로 전해졌다.
강 시장은 임기 마지막 날인 지난달 30일 새벽까지도 시장으로서의 자세를 끝까지 잃지 않아 ‘유종의 미’를 거뒀다는 평가를 받았다. 시장 고유 업무도 아니지만 ‘일벌레’라는 별명에 걸맞게 총파업 중이던 광주시내버스 노사간의 임금협상을 끈질기게 중재해 시민들의 발인 시내버스 파업을 풀도록 유도한 것이다. 협상장을 빠져 나와 국립 5·18민주묘지를 참배하고 곧바로 이임식을 치른 강 시장은 평범한 시민으로 돌아갔다.
광주시의 한 공무원은 “강 시장이 임기 마지막 날의 밤을 꼬박 새우면서 13시간 동안 흐트러짐 없이 중재에 임하는 꼿꼿한 자세를 보고 공직자로서의 본분을 되새기게 됐다”며 “참으로 배울게 많았던 선배공무원으로 기억하게 될 것”이라고 강 시장과의 이별을 아쉬워했다.
7월1일부터 ‘전 시장’이라는 타이틀을 달게 된 강 전 시장은 1994년부터 1995년 지자체 선거 이전까지 마지막 관선 광주직할시장을 지냈다.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한 그는 행정고시 출신으로 농림수산부장관과 내무부장관을 거쳐 16·18대 국회의원을 역임했다.
광주=장선욱 기자 swjang@kmib.co.kr
강운태 광주시장의 고뇌 어린 작별편지에 시민들의 눈길 쏠려
입력 2014-07-03 00:27 수정 2014-07-04 09: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