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 “표절은 기본, 칼럼은 선택” 김명수 교육 후보자 제자의 실명 편지글

입력 2014-06-30 09:31

논문 표절 의혹을 받고 있는 김명수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에게서 석사학위 논문 지도를 받은 제자가 실명으로 김 후보자의 책임을 묻는 편지를 보내왔다고 한겨레 경향신문 등이 30일 보도했다.

김 후보자가 교수 생활을 해온 한국교원대에서 논문지도를 받은 현직 초등학교 교사 이희진씨가 편지를 쓴 주인공이다. 이 교사는 “논문 표절 의혹은 해명이 필요 없는 일”이라며 “그 상황을 알고 있는 수많은 교수님의 제자들을 기만하지 말아 달라”고 말했다. 해명조차 필요 없는 명백한 표절이란 제자의 고발이다.

이 교사는 김 후보자의 신문 칼럼조차 학생들이 사실상 대신 썼다고 주장했다. 이 교사는 “교수님께서 오랫동안 맡아 오신 <문화일보> 칼럼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라며 “교수님이 말씀해 주시는 방향과 논지로 학생이 글을 쓰고 교수님께서 그 글을 확인하신 뒤 조금 수정해서 넘기시는 것이 <문화일보> 칼럼이었습니다”라고 밝혔다.

이 교사는 또 “교수님께서 다른 대학이나 기관에 특강을 나가실 때 필요한 원고를 석사과정 학생이 매번 대신 썼다”라며 “발표할 프레젠테이션 자료 역시 학생이 만들었다”고 했다. 게다가 “(김 후보자가) 원고와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다 읽을 수 없으니 중요한 부분만 발췌해서 발표할 원고만 따로 메모로 만들어 달라”고 했다고 전했다. 심지어 “발표 장소까지 운전도 시키셨습니다”라고 주장했다.

이 교사는 김 후보자의 교수시절 요구에 대해 “정면에서 거절하지 못하고 돌아서서 욕하는 학생의 모습도 대학원의 일상”이라고 했다. 또 “물론 노동의 대가는 없었다”고 전했다. 이어 “제자들을 기만하지 말아주세요”라며 “그때는 관행이었기에 서로 모른 척 넘어갔다 하더라도 지금 이렇게 전 국민에게 알려진 상황에서 더 물러설 곳은 없다”라며 “부디 교수님, 인정하고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주세요”라고 부탁했다.

이 교사는 2009~2010년 한국교원대에서 김 후보자에게 석사학위 지도를 받았다. 김 후보자가 문화일보에 교육 관련 칼럼을 집필한 것은 2006년부터 2014년까지 8년간이다. 참여정부시절 김병준 전 교육부총리가 논문 및 BK21 연구실적 문제 이후 스스로 그만 둔 게 2006년이다. 당시에도 “관행이었다”라는 해명은 있었지만, 제자가 은사의 부조리를 직접 고발한 편지글은 공개된 바가 없었다. 이 교사의 편지에 대해 김 후보자는 “청문회에 가서 이야기 하겠다”라며 사실관계에 대해 별다른 해명을 하지 않고 있다.

사진=국민일보DB

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

다음은 현직 초등교사 이희진씨가 보내와 공개된 편지글 전문.

안녕하세요, 김명수 교수님.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되셨다는 소식을 뉴스로 접했습니다. 포털사이트마다 교수님 사진이 메인화면에 걸립니다. 어느 비 오는 날 찍힌 사진을 보면서 제가 교수님께 지도받으며 교원대 대학원에서 공부했던 것이 2009~2010년인데 그때 쓰시던 우산을 아직 쓰시는구나 생각했습니다. 다른 생각도 많이 납니다.

대학원 재학 시절 다른 학생들과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지도교수님이 단독 저서 하나 없는 거 너무 속상하다고. 그래서 학생들이 함께 원서라도 번역한 뒤 교수님께 지도받고 교수님 단독 저서로 출간하시라 제안을 드릴까 하는 이야기도 했죠. 그럴 만큼 저뿐 아니라 연구실에 있는 학생들이 모두 알고 있었습니다. 교수님의 연구실적이 별로 없다는 걸요.

지금 표절 의혹이 제기되는 논문 중 상당수는 제가 같이 수업을 들었거나 연구실에서 뵈었던 사람들의 논문입니다. 저는 그 논문을 원저자가 쓰는 과정도 보았고, 다 쓴 논문을 교수님을 제1저자로 하여 학술지에 싣기 위해 학생이 스스로 요약하는 과정도 여러 차례 보았습니다. 교수님께서 다른 대학이나 기관에 특강을 나가실 때 필요한 원고를 석사과정 학생이 매번 대신 썼습니다. 발표할 프레젠테이션 자료 역시 학생이 만들었습니다. 게다가 “이 원고와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다 읽을 수 없으니 중요한 부분만 발췌해서 발표할 원고만 따로 메모로 만들어달라”고 하셨죠. 발표 장소까지 운전도 시키셨습니다. 이런 교수님의 요구를 정면에서 거절하지 못하고 돌아서서 욕하는 학생의 모습도 대학원의 일상이었습니다. 물론 노동의 대가는 없었죠.

교수님께서 오랫동안 맡아오신 <문화일보> 칼럼 역시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교수님이 말씀해주시는 방향과 논지로 학생이 글을 쓰고 교수님께서 그 글을 확인하신 뒤 조금 수정해 넘기시는 것이 <문화일보> 칼럼이었습니다.

물론, 학생에게 특강 원고를 맡기고 가짜 프로젝트를 하고 사적인 일에까지 학생을 동원하는 것은 교수님만이 하신 일이 아니었습니다. 많은 교수님들이 그러하십니다. 교수님들끼리도 서로가 서로를 비난하셨고, 저 역시 그런 교수님들과 요구에 굴복하는 학생들을 비난했지만 문제제기를 하거나 해결할 생각은 못했습니다. 교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관행’은 이런 것일 겁니다. 잘못이지만 계속 그렇게 행해져 와서 잘못으로 인식되지 않는 것. 잘못임을 알지만 고치려고 나서지 않은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만든 사회악. 그것이 관행입니다.

그러니 교수님, ‘관행이었다’ 혹은 ‘학생의 동의가 있었다’는 말은 변명이나 해명이 될 수 없습니다. 논문 표절 의혹은 해명이 필요 없는 일입니다. 원 논문과 표절 논문을 비교하면 누구나 확인이 가능합니다. 또한 표절에서 원저자의 동의 여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교수님께서 제게 주셨던 가르침처럼, 논문과 연구는 지식의 생성과 공유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고, 그 두 개는 완전히 다른 과정이니까요. 제가 쓴 이 글은 저의 것이고, 누군가 이 글을 공유하는 것에 대해 제가 동의한다고 해서 이 글을 쓴 사람이 바뀌는 게 아니라는 것은 연구윤리를 따지지 않더라도 자명한 일입니다.

그러니 교수님, 부디 논문 의혹에 대해 해명하지 말아주세요. 인정하고 그간 미처 교수님께 대면해 싫다고 말하지 못한 수많은 제자들에게 사과해주세요. 그리고 스승으로서 치열하게 연구하고 학문을 닦는 문화를 보여주기보다 학생들끼리 교수의 총애를 사이에 둔 경쟁을 하게 한 것에 대해 부디 책임을 통감해주세요. 평생 대학 강단에서, 그리고 연구자로 살아오신 교수님의 지난 족적이 낱낱이 밝혀지는 지금, 그 상황을 알고 있는 수많은 교수님의 제자들을 기만하지 말아주세요. 그때는 관행이었기에 서로 모른 척 넘어갔다 하더라도 지금 이렇게 전 국민에게 알려진 상황에서 더 물러설 곳은 없습니다. 그 끝에서 부디 교수님, 인정하고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주세요.<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