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문창극 "지금 사퇴하는 게 박 대통령 돕는 거라 판단"

입력 2014-06-24 10:51

문창극 총리 후보자가 24일 기자회견을 갖고 총리 후보에서 자진 사퇴했다. 문 후보자는 그간 쏟아졌던 친일 반민족주의자라는 비난에 대해 하나하나 해명을 한 뒤 “박근혜 대통령을 돕고 싶었지만 지금 시점에서 제가 사퇴하는 것이 박 대통령을 도와드리는 것이라고 판단했다”며 사퇴 의사를 밝혔다.

<문 후보자의 사퇴 회견문 전문>

저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 자리에 섰다. 저와 같이 부족한 사람에게 그동안 많은 관심을 쏟아주신 것에 대해 마음 속 깊이 감사함을 느낀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한결같은 마음으로 저를 도와주신 총리실 동료 여러분들, 그리고 밖에서 열성적으로 지원해주시고 기도해주신 여러분에게 감사드린다. 또 밤을 세우며 취재를 하신 기자 여러분을 보면서 저의 젊은 시절을 다시 한번 더듬어보는 기회도 갖게 됐다. 40년 언론인 생활에서 본의 아니게 마음 아프게 해드린 일이 없었는가를 반성하는 시간도 가졌다.

저는 외람되지만 이 자리를 빌어 감히 몇 말씀 드리고자 한다. 저는 박근혜 대통령께서 나라의 근본을 개혁하시겠다는 말씀에 공감했다. 또 분열된 이 나라를 통합과 화합으로 끌고 가시겠다는 말씀에 저도 조그만 힘이지만 도와드리고 싶었다. 그러나 제가 총리 후보로 지명받은 후 이 나라는 더 극심한 대립과 분열 속에서 빠져 들어갔다. 이러한 상황은 대통령께서 앞으로 국정 운영을 하시는데 걸림돌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됐다.

또 이 나라의 통합과 화합에 조금이라도 기어코자 한 저의 뜻도 무의미하게 됐다. 저는 민주주의 특히, 자유민주주의를 신봉하는 사람이다. 자유민주주의란 개인 자유 인권, 천부적 권리인 다수결에 의해서도 훼손될 수 없다는 원칙을 지키는 제도이다. 여론에 흔들리지 않는 법이 필요하다. 민주주의는 주권자인 국민의사와 법치라는 두 개의 기둥으로 떠받쳐 지탱되는 것이다. 국민의 뜻만 강조하면 여론 정치가 된다.

이 여론이라는 것의 실체가 무엇인가? 여론은 변하기 쉽고 편견과 고정관념에 의해 지배받기 쉽다. 법을 만들고 법치의 모범을 보여야 할 곳은 국회다. 저의 일만 해도 대통께서 총리 후보를 임명했으면 국회는 법 절차에 따라 청문회 개최 의무가 있다. 그 청문회 법은 국회의원님들이 직접 만드신 것이다. 그러나 야당은 물론 여당 의원 중에서도 많은 분들이 이러한 신성한 법적 의무를 지키지 않고 저에게 사퇴하라고 말씀하셨다. 국회가 스스로 만든 법을 깨면 이 나라는 누가 법을 지키겠는가?

국민 뜻이라는 이름으로 오도된 여론이 국가를 흔들 때 민주주의는 위기를 맞는다. 언론의 생명은 진실보도다. 다른 몇 구절을 따내서 그것만 보도하면 그것은 문자적인 사실 보도일 뿐이다. 그러나 그것이 전체 의미를 왜곡하고 훼손시킨다면 그것은 진실 보도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널리즘 기본은 사실 보도가 아니라 진실 보도다. 우리 언론이 진실을 외면한다면 이 나라 민주주의 희망이 없다.

신앙 문제에 말씀드린다. 소중한 기본권이다. 제가 평범했던 개인 시절 저의 신앙에 따라 말씀드린 것이 무슨 잘못이냐? 제가 존경하는 김대중 전 대통령은 옥중서신에서 신앙을 고백하며 고난의 의미를 밝혔다. 그 책을 읽고 젊은 시절 감명을 받았다. 그렇게 저는 신앙 고백을 하면 안되고 김대중 대통령은 괜찮은 겁니까?

마지막 드릴 말씀은 총리 지명을 받은 후 벌어진 사태로 우리 가족은 역설적으로 뜻하지 않은 큰 기쁨을 갖게 됐다. 저를 친일과 반민족이라고 주장하는 것에 대해 저와 제 가족은 너무나 큰 상처를 입었다. 문남규 남영 남자 별규 자 삼일 운동 때 만세 부르시다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아버지 문기석, 터 기자 주석 석자 로부터 듣고 자랐다. 사실 우리 민족 가운데 만세 부르지 않은 분이 누가 있나? 그렇지만 돌아가셨다고 했기 때문에 우리도 당당한 조상을 모신 사람이구나 생각했다.

저에 대한 공격이 사리에 맞지 않기에 제 가족 이야기를 했다. 검증팀이 제 자료로 보훈처에 알아봤다. 뜻밖에 저희 할아버지가 평북 삭주에서 순국 밝혀져 건국훈장 애국장이 2010년 추서된 것 알게 됐다. 저의 자녀들도 검색을 해봤다. 여러분도 검색창에 문남규 삭주 쳐 봐라. 저의 원적은 평북 삭주다. 그리고 이 사실이 실려 있는 1921년 상해 임시정부 독립신문을 찾아봐라. 저희 가족은 이 사실을 밖으로는 공개치 않고 조용히 처리키로 했다고 어제 말씀드렸다. 이런 정치 싸움에 나라에 목숨 바친 할아버지 명예가 훼손될수 있기 때문이다. 저는 이 나라 독립위해 목숨 바친 분의 손자로서 법 절차에 따라 다른 경우에 따라 똑같이 처리해주시길 간곡히 부탁한다.

저를 이 자리에 불러주신 분도 그 분이고 저를 거두어들이는 분도 그 분이다. 저는 박 대통령을 돕고 싶었다. 그러나 지금 시점에서 제가 사퇴하는 것이 박 대통령을 도와드리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저는 오늘 총리 후보를 자진사퇴한다. 감사하다.

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