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전인치유 사역의 개척자인 이박행(52·복내전인치유선교센터 원장·천봉산 희년교회·사진)목사가 소천한 부친을 그리워하는 애틋한 글을 22일 지인들에게 띄워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지난달 24일 부친이 별세한 이 목사는 이메일로 보낸 장문의 편지에 부친과 이별하게 된 자신의 심경을 담담히 담았다. 그는 ‘사랑하는 복내 가족 여러분께. 주님의 위로와 평강이 함께 하시길 기원합니다’라는 제목의 글에서 “부친상을 당해 어려울 때 진심이 담긴 여러 위로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며 “아버지를 보내드리고 자식으로 부족했던 것을 돌아보고 있다”고 먼저 자신의 근황을 전했다.
“노인성 질환으로 6년 동안 힘든 요양 생활을 하셨던 터라 한편으로 어깨가 가벼움을 느낍니다. 제가 어렸을 때부터 잦은 병을 앓아 부모님보다 먼저 세상을 떠날 수 있다는 중압감이 있었습니다. 어쨌든 제 손으로 아버지를 먼저 떠나 보내드려 불효는 면했다는 생각에 홀가분한 마음입니다.”
이 목사는 장기간 병마에 시달리던 부친을 여윈 심경을 솔직하고 애잔하게 술회했다.
“아버지 장례 덕분에 가족들이 오랜만에 다 모였습니다. 외국에서 선교 활동을 하는 막내가 때마침 선교단체 지역별 리더회의 참석을 위해 국내에 체류 중이어서 쉽게 합류할 수 있었습니다. 장례절차를 마치고 화장을 하여 함평 선산 할아버지 바로 아래에 안치하였습니다. 깊은 우애를 나누시던 두 분이 함께 계시니 외롭지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는 아버지와 할아버지를 선산에 나란히 모시게 된 게 천만다행이라며 자신을 키워주신 아버지의 인생을 담백하게 회고했다.
“이제는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정신적 유산을 정리해야 할 때입니다. 아버지는 고등학교 교사로부터 면장, 정치인, 사업가 등 다양한 활동을 하셨습니다. 부침이 심한 경제형편 때문에 늘 불안했고 어린시절 아버지로부터 받은 상처로 힘들었습니다. 어머니께서도 평생 많은 아픔을 감내하셔야만 했습니다. 동생들도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이 목사는 이어 심각한 질환을 앓아 죽음의 문턱에 선 후에야 갈등을 겪던 아버지와 원만한 관계를 회복하게 됐다고 정직하게 털어놨다.
“어두운 마음으로 살아오던 중 청년 때에 간경화를 앓게 되었습니다. 현대의학으로 별 다른 치료법이 없어 오산리 금식기도원에 올라갔습니다. 금식 기도를 하던 중에 제가 생을 마감하고 하나님 앞에 서야 한다면 무엇을 정리해야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 하게 됐습니다.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게 아버지와의 관계였습니다. 그동안 받았던 상처 때문에 여간해서 용서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시는 마음은 그를 진심으로 축복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소극적 용서보다 강한 것은 사랑과 축복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영성치유를 받아 기도원을 나온 후로 아버지에 대한 연민과 사랑의 불씨를 끄지 않으려고 꾸준히 노력해왔습니다.”
이 목사는 극한상황에 놓인 아버지의 병 수발을 하면서 아버지의 미소를 오랜만에 보고 부자관계의 화해를 이루게 됐다고 고백했다.
“돌아가시기 전 아버지는 극도로 쇠약해지신 채 중환자실에 누워계셔야 했습니다. 제가 병문안을 갔을 때에 변의가 있다고 하셔서 화장실에 모시고 갔습니다. 변이 잘 나오지 않아 안간힘을 다 하셨지만 오래된 변비가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얼마나 답답하셨던지 자신의 손을 항문에 넣고 변을 파내셨습니다. 순식간에 일어난 상황이라 곁에서 아무런 조치도 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옆에 있는 목욕실로 이동해서 전신목욕을 시켜 드렸습니다. 변 처리가 안 된 상태에서 역겨운 일이었지만 자식 된 도리로 했습니다. 야위고 앙상한 아버지의 무기력해진 모습을 보면서 연민과 동정이 솟아오르더군요. 젖은 머리를 드라이로 말리고 로션으로 온 몸을 보습시켜 드렸습니다. 부축하여 침대로 옮겨 드렸더니 모처럼 흐뭇한 미소를 지으시더군요. 이것이 이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가졌던 저와 아버지의 화해의식이었던 것 같습니다. 저를 이 땅에 생명체로 탄생시키시고, 고난을 통해 빚어주신 아버지 역시 하나님의 도구이셨습니다. 부모님의 근본을 거슬러 올라가면 창조주 하나님이 계시죠. 아버지를 마음으로 떠나보내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버지! 편안한 마음으로 잘 가십시오.”
이 목사는 마지막으로 아버지와 이별 후 하나님을 섬기는 주의 종으로서 단단한 각오를 다졌다.
“저 자신이 좀 더 자유로울 것 같습니다. 내면의 쓴 뿌리를 넘어서서 하나님 아버지와 더욱 친밀하게 지내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으로 저의 마음을 채워 가겠습니다. 넉넉한 사랑의 가슴으로 품어주시는 그 분을 신뢰하면 살겠습니다. 세상을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으로 품어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아버지의 부재로 인해 존재의 허무감에 빠져 있는 슬픈 세대를 위로하는 통로가 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으로 여러분을 섬기도록 하겠습니다.”
전남대를 졸업한 이 목사는 1994년 전남 보성 복내면 일봉리에 말기 암 환자들을 돌보는 복내전인치유선교센터를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사랑받는 세포는 암도 이긴다’는 구호로 현대의학과 영성치유, 식이요법이 결합된 전인치유를 통해 암 환자의 효과적 재활과 기독교 생명운동, 암 예방 교육에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2005년 7월과 8월 국민일보 ‘역경의 열매’에 12회에 걸쳐 파란만장한 인생의 줄거리가 소개됐던 그는 현재 천봉산 희년교회 담임목사를 맡고 있다.
광주=장선욱 기자 swjang@kmib.co.kr
아버지 떠나보낸 이박행 목사의 편지… 잔잔한 감동
입력 2014-06-23 13: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