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장현 광주시장 당선과 지방자치제에 관한 소고

입력 2014-06-13 22:57 수정 2014-09-03 06:58
윤장현 광주시장 탄생과 지방자치제 발전에 관한 소고(小考).

윤장현 광주시장 당선자는 6·4지방선거에서 탄생한 최고의 ‘스타’로 손색이 없다. 새정치민주연합에서 유일하게 전략공천을 받고 출마해 145만 광주시민들의 살림을 책임지는 광역단체장으로 우뚝 섰다. 광주지역 6000여 공직자의 생사여탈권을 한손에 거머쥔 그는 안철수 공동대표의 대권고지 진군(進軍)에도 활력소가 됐다. 윤 후보는 당초 팽팽한 접전을 이룰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압승을 거뒀다. 하지만 선거 이후 광주시민들의 표정이 그다지 밝지 않다. 행정경험이 없는 초보자에게 ‘광주호’의 운항을 맡겼다는 불안감일까. 아니면 신임 단체장에 대한 애정 어린 노파심일까.

“두 눈 질끈 감고 민주당에 뿌리를 둔 새정치민주연합 후보를 무조건 찍은 것이죠. 윤 후보가 만약 무소속으로 출마했다면 한나라당 후보만큼도 득표하기 힘들었을지 몰라요.”

지방선거 직후 만난 한 40대 지인은 광주 유권자들의 표심을 이렇게 얘기했다.

“윤장현이 누군지도 모르는 80대 이모님이 무조건 다음 대선에서 이기려면 2번을 찍어야 한다고 몇 번이나 말씀하셨다니까. 광주시민들은 전부 정치 9단이야.”

우량기업을 운영하는 50대 사장도 “이심전심”이라며 힘을 실었다.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선거 결과를 두고 뒤늦게 왈가왈부하자는 게 아니다. 유권자들의 선택은 언제나 현명하다. 선거를 치른 지 10일이 흘렀다. 윤 당선자의 취임식까지는 20일이 남았다.

7월 1일 취임식을 앞두고 벌써부터 윤 당선자 주변에서는 논공행상이 치열하다.

‘희망 광주 준비위’로 명명된 인수위 구성을 둘러싼 뒷말도 무성하다. 어쩌면 당연한 절차다. 민주주의는 갑론을박이 필수다. 까다롭고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옥동자를 순산하는 것이다.

하지만 윤 당선자가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게 있다. 자신을 찍어준 유권자 36만7203명의 심경을 적확하게 헤아리는 일이다.

‘안철수의 남자’ 윤장현이 아니라 ‘광주시민의 대변자’ 윤장현으로 홀로 서야 한다.

윤 당선자를 필두로 한 인수위는 벌써부터 선거과정에서 제시된 시민밀착형 공약을 실천하기 위해 팔을 걷어 붙였다. 그는 재선 성공으로 단숨에 대권반열에 오른 박원순 서울시장을 벤치마킹하겠다며 ‘혁신공약추진 TF팀’을 서울에 파견하는 등 의욕을 보이고 있다. 시민들과 소통하는 창구로 희망광주 홈페이지도 신속하게 개설했다.

이 같은 분위기 속에서 광주의 오피니언 리더들도 줄서기에 바쁘다. ‘그들만의 리그’에서 배제되지 않기 위한 자위책이자 민선 6기 광주권 ‘이너 써클’에 들어가기 위한 몸부림이다.

그렇다면 윤 당선자의 승리는 지방자치제 발전에 도움이 될까, 해가 될까.

결론부터 꺼내자면 단연코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단견이지만 확실하다고 믿고 싶다.

반대의견을 제시하는 이들은 민주적 절차를 무시하고 전략공천을 받은 윤 후보가 지방자치제를 후퇴시켰다고 주장할지 모른다. 논리적 근거도 분명하다. 경선절차가 생략된 윤 당선자의 전략공천이 민주적이지 못했다는 데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NGO의 영역에 오랫동안 머물다 제도권에 진입한 윤 당선자의 사례는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한마디로 전략공천으로 인한 ‘흠결’이나 ‘실(失)’보다는 야권 지도부의 입지를 굳혀준 ‘강점’과 ‘득(得)’이 많을 것이라는 얘기다.

첫째, 지방권력의 정점인 시장은 누구나 될 수 있다는 공감대와 사회적 인식이 확산됐다는 것이다. 과거 시민단체와 관청은 상투적 대립 관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환경훼손이 수반되는 각종 개발사업 등을 둘러싸고 샅바싸움을 하기 일쑤였다. 그래서 항상 물과 기름의 관계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광주지역 시민단체의 대부로 불리던 윤 당선자가 지방권력을 쥐게 되면서 그 구분이 대부분 무너지게 됐다. 우선 시민단체 운영진을 바라보는 공무원들의 시각이 달라질 게 분명하다. 혹시 차기 시장에 오를지도 모를 다른 시민단체 대표를 함부로 다루거나 소홀하게 응대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둘째, 풀뿌리 민주주의의 진정한 의미가 각계각층에서 살아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동안 관료나 정치인들이 독식하던 단체장 자리에 순수한 시민운동가 출신이 앉았다는 것은 고무적이다. 윤 당선자가 제2의 박원순 서울시장이 될 것이라는 기대에는 풀뿌리 민주주의 정착에 대한 희망이 내재돼있다. 다음 대통령 선거에서는 단체장 업무수행을 통해 능력과 도덕성을 검증받은 이들이 경합하게 될 것이라는 예측은 과언이 아니다. 광역단체장 재선에 성공한 잠룡(潛龍)들은 벌써부터 자의반 타의반 유력한 대권후보로 거론되는 상황이다.

셋째, 윤 당선자의 시장업무 수행이 성공적이건 그렇지 못하건 지방자치제는 더욱 성숙해갈 것이라는 주지의 사실이다. 지방자치제 출범 이후 ‘가장 못한 민선단체장이 가장 잘한 관선단체장보다 낫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관청의 문턱이 낮아졌고 공무원들은 훨씬 친절해졌다.

시민운동가들이 넘볼 수 없었던 광역단체장에 박원순 서울시장이 처음 당선됐던 맥을 윤장현 당선자가 잇게 된 것은 분명 자치제가 무르익어 간다는 방증이다. 여기에는 정치적 덤도 만만치 않다.

안과의사 출신인 윤 당선자가 민주적 시정운영을 통해 뛰어난 역량을 과시한다면 민선 6기 임기 막바지인 2017년 12월 치르게 될 19대 대통령 선거에서도 영향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윤 당선자와 특별한 인연이 없다. 곰곰이 기억을 되살리자면 조선중기 문신 송강 정철의 후손임을 자랑하던 한 선배와 몇 차례 동석했던 게 전부다. 시와 소설을 쓰는 그 선배에게 윤 당선자가 세심한 예우와 배려를 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남아 있을 뿐이다.

취임식도 치르지 않은 윤 당선자에게 많은 고언(古言)을 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여겨진다. 사실상 일면식도 없는 관계지만 윤 당선자에게 이번 기회를 통해 한마디 남기고 싶다. 과욕은 금물이라는 점이다. 서둘러 성과를 내려고 한다면 백전백패할 것이다. 시민들과 끝까지 한 곳을 바라보고 임기를 마칠 때까지 초심(初心)을 잃지 않기를 바란다.

광주=장선욱 기자 sw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