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손 이운재가 4골먹은 정성룡에게 “축구는 실수의 스포츠”

입력 2014-06-11 15:42 수정 2014-06-11 16:45
2010 남아공월드컵 대표팀 당시 이운재와 정성룡, 사진=김지훈 기자, 국민일보DB

2002 한·일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이자 2006 독일월드컵까지 한국 축구 대표팀 골문을 지켰던 사나이. 거미손으로 불리던 그가 음주파동으로 삐끗하자 대표팀 주전 자격을 얻었고, 이후 2010 남아공월드컵 첫 원정 16강의 위업을 달성한 후배 수문장. 이운재와 정성룡 이야기다.

한국 축구팀의 대표 수문장이던 이운재 현 23세 이하 대표팀 골키퍼 코치가 10일 월드컵 최종 모의고사인 가나와의 평가전에서 네 골이나 내준 정성룡에게 공개 글을 남겼다. 이운재는 11일 일간스포츠에 보낸 기고문에서 “축구는 실수의 스포츠”라고 말했다. 특히 정성룡을 향해서는 “4골이나 내준 것은 골키퍼 잘못이라는 무거운 책임감을 가졌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이운재는 글에서 “가나 전에서 뛴 골키퍼 정성룡에게도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신문사에 보낸 관전평이 담긴 공개 글이란 점에서 ‘성룡이에게’도 아니고 ‘정성룡씨에게’도 아닌, ‘정성룡에게’였다.

이운재는 “네 번째 골을 허용할 때 정성룡이 수비수 홍정호에게 상대 선수를 끝까지 마크하라고 체크를 해줄 시간적 여유가 충분했는데 그렇게 못했다”고 지적했다. 정성룡에게 자신이 한 때 그랬던 것처럼 ‘가만히 있지’ 말고 소리지르며 뛰어다니란 이야기다.

이운재는 또 “세번째 실점도 중거리 슛도 슛 자체는 분명 막기에 쉽지 않은 코스였다”면서도 “하지만 골키퍼가 쉽게 포기하면 안 된다”라고 말했다. 실점 할수도 있지만 실점 이후 그라운드에 한쪽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여선 안 된다는 뜻이다. 대부분 신문의 메인 사진을 장식했던 정성룡의 이 포즈가 이운재 가슴을 후벼 팠던 것이다.

축구팀에서 골키퍼는 3명으로 구성된다. 1명이 주전이고, 나머지 2명은 백업이다. 포지션 특성상 주전 골키퍼 1명을 제외한 2명은 출전할 기회를 갖기 쉽지 않다. 체력소모가 많은 필드플레이어 교체가 우선이어서 골키퍼는 중상을 입지 않는 한 교체되지 않는다. 훈련은 3명이 똑같이 하는데도 나머지 2명이 그라운드를 거의 밟지 못하는 이유다.

이운재와 정성룡의 관계가 그랬다. 이운재는 2002 한·일월드컵과 2006 독일월드컵 전 경기를 소화했다. 2008년 음주파동으로 이운재는 대표팀 수문장 자리를 정성룡에게 내줬다. 이운재 나이가 많기도 했다. 이후 정성룡은 2010 남아공월드컵에서 역시 전 경기를 소화했다. 4년 전인 당시의 이운재는 정성룡의 백업이었다. 남아공까지 함께 날아갔지만, 불혹을 앞둔 나이에서 오는 체력 저하 등이 정성룡에게 길을 열어준 것이다. 이제 정성룡은 두 번째 월드컵을 앞두고 있다.

이운재는 거듭 정성룡에게 “최대한 막겠다는 마음으로 끝까지 몸을 날리고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정성룡 뿐만 아니라 다른 대표팀 선수들에게도 글을 남겼다. 그는 “후배들아, 고개 숙이지 말아라”라며 “아직 뚜껑은 열리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운재는 ‘쇄신’을 주문했다. 그는 월드컵 대표팀 선수들에게 “너희들 각자가 이 경기를 계기로 생각과 마음을 바꿔야겠다고 결심했을 때 전화위복이 된다”라며 “23명 각자 스스로 쇄신해야 한다. 그래야 희망이 보인다”라고 말했다.

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