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선거 이후 속내 드러낸 광주 유권자들

입력 2014-06-05 10:44
6·4지방선거에서 새정치민주연합 윤장현 광주시장 후보가 예상을 뛰어넘는 20%포인트 이상의 격차로 현직 시장인 강운태 후보를 따돌린 데 대한 해석이 분분하다. 윤 후보가 ‘안철수의 남자’로 널리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4일 밤 윤 후보 당선이 굳어지자 윤·강 후보가 일합을 겨룬 광주지역 곳곳에서는 선거결과를 둘러싼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에 불과하지만 이 같은 논쟁은 더욱 확산되는 추세다. 윤 후보가 철옹성으로 인식되던 강 후보의 아성을 무너뜨린 직접적 원인과 배경은 무엇일까. 다시 말해 당초 시민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윤 후보를 전략공천한 새정치민주연합 안철수 대표를 광주의 유권자들이 너그럽게 용인했느냐 여부가 초미의 관심거리다.

윤·강 두 후보는 1995년 제1회 지방선거 이후 이번 선거에서 사상 최초로 양강 구도를 형성했다. 야당의 심장부인 광주에서는 그동안 ‘공천=당선’이라는 공식이 선거 때마다 성립돼왔다. 하지만 이번 선거에서는 그 공식이 깨질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점쳐졌다. 광주의 상당수 유권자들은 안 대표가 윤 후보를 전격 전략공천하자 ‘안철수가 과거 김대중 전 대통령 자리에 앉은 줄 아는 모양’이라며 불쾌감을 감추지 않았다.

광주 유권자들은 그런데도 막상 선거 기표소에서 안 대표가 점찍은 윤 후보에게 훨씬 많은 표를 던졌다. 윤 후보는 그 덕분에 팽팽한 접전이 예상되던 선거에서 예상을 깨고 낙승을 거뒀다. 윤 후보 자신뿐 아니라 광주시민들도 놀란 결과였다. 탄탄한 인지도와 현직 프리미엄 덕분에 철옹성을 갖춘 것으로 평가받던 무소속 강 후보는 분루를 삼켰다. 그렇다면 광주 유권자들은 과연 “광주의 선택에 따라 향후 총선은 물론 17대 대선 결과가 결정 된다”고 외치던 안 대표를 온전히 받아들인 것일까. 문제는 선거결과와 상관없이 안 대표를 바라보는 광주 유권자들의 시선이 그다지 곱지 않다는 것이다. 비록 윤 후보가 무소속 단일화에 성공한 강 후보를 눌렀지만 전략공천에 대한 불만이 눈 녹듯 사라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광주 유권자들이 ‘공천=당선’이라는 공식이 다시 유지되는 것을 다시 감수한 것은 야권의 심장부라는 위상을 지키기 위해 표를 던진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윤 후보에 대한 선택을 통해 안 대표의 향후 정치적 입지를 염려했다기보다는 민주당에 뿌리를 둔 새정치민주연합에 대한 기대를 불가피하게 저버릴 수 없었다는 의미다.

박영철(가명·49)씨는 “윤장현 후보가 당선된 것은 광주가 안철수 의원을 전폭적으로 지지했다기보다 한번 더 기회를 줬다는 뜻으로 해석해야 옳다”며 “안철수는 광주의 유권자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조남영씨(55)씨 역시 “광주가 안철수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민주당을 선택한 것”이라며 “안철수가 착각하면 곤란하다”고 주장했다.

당 차원의 전폭적 지지를 업은 윤 후보와 안 대표는 실제 광주의 변화를 통해 오는 2017년 정권교체를 하겠다며 표심을 파고들었다. 안 대표도 최근 2주 동안 세 번이나 광주를 찾아 윤 후보에 대한 지지를 호소했다. 그러나 광주 유권자들은 야권의 차기 대선주자로 안철수가 적절한지에 관해서는 여전히 말을 아끼고 있다.

안철수가 부산 출신이라는 지역적 한계보다 그의 우유부단한 정치성향에 대한 거부감을 표시하고 있다. ‘비판적 지지’라는 의견도 적잖다. 안 대표와 그가 전략공천한 윤 후보가 좋아서보다는 강 후보가 미워서 표를 찍었다는 유권자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는 사실이다. 트위터 아이디 은수@eunsulaw 사용자는 “새정치연합은 윤장현 후보가 당선된다면 본인들의 전략공천보다 강운태 현 시장의 부정부패가 더 싫었다는 것을 알아주기 바랍니다. 유권자로서 이번 광주시장선거 입후보 등록은 정말 최악이었습니다”라고 토로했다. 양심과진심그리고정의@machael6010라는 아이디 사용자 역시 “강운태가 미워서 윤장현 찍었다는 사람 많았어요. 안철수에 대한 면죄부를 준 것은 결코 아니다”고 강조했다.

1995년 마지막 관선시장에 이어 두 번의 장관, 두 번의 국회의원, 민선5기 시장에 이어 세 번째 광주시장이 되려던 강 후보의 꿈을 물거품으로 막을 내렸다. 대신 광주는 6·4지방선거에서 결국 윤 후보를 선택했다. ‘안철수 신당’이 민주당과 합당해 만든 당이 공천한 윤 후보를 차기 광주시장으로 선출했다. 안 대표의 독자세력화를 계기로 정치에 본격 입문한 윤 후보는 단번에 광역단체장 자리를 거머쥐었다. 그러나 광주시장 선거가 끝난 이후 광주의 많은 유권자들은 개운치 않은 뒷맛을 다시고 있다. 낙선한 강 후보와 함께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한 이용섭 후보로 만일 무소속 후보가 단일화됐다면 이번 선거결과가 크게 달라졌을 것이라는 데 대부분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민주화의 도시로 불리는 광주의 민심이 선거 이후에도 요동치는 이유다.

광주시민들은 “투표결과를 새정치민주연합 안철수 공동대표에 대한 절대적 신임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곤란하다”며 “민주당에 뿌리를 둔 야권의 분발과 도약을 촉구하는 의미가 더 크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광주=장선욱 기자 sw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