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들의 투표…악수 거부에 주민증 대신 신용카드

입력 2014-06-04 15:23

대통령도 유권자다. 현직이든 전직이든, 평범한 시민과 똑같이 1표로 계산된다. 그게 민주주의다.

6·4 전국 동시 지방선거가 실시된 4일 박근혜 대통령은 투표하다 투표소에서 야당 참관인에게 손을 내밀었으나, 악수를 거부당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신분 확인 때 주민등록증 대신 카드를 내밀어 웃음을 유발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사전투표에 참여해 이날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노태우 김영삼 대통령은 와병중이라 투표를 할 수 없는 상황인 것으로 전해진다. 김대중 노무현 두 대통령은 알다시피 고인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날 오전 9시 회색 재킷에 회색 바지, 회색 구두를 신고 청와대 인근 서울 종로구 청운동 서울농학교 강당의 청운효자동 제1투표소에 들어섰다. 첫 번째 서울시장 등 석 장짜리 투표용지에 기표를 마친 박 대통령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여기다 넣으면 됩니까”라고 묻고 투표함에 자신의 선택지를 넣었다.

두 번째 비례대표 정당 등을 선택하는 넉 장짜리 기표용지를 받아 들고서 그는 줄을 섰다. 앞 사람 기표를 마칠 때까지 투표용지를 세어보며 살짝 미소도 선보였다.

문제 장면은 퇴장할 때 나왔다. 박 대통령은 투표를 마친 뒤 기립한 투표 참관인들과 한명씩 차례로 악수했다. 그런데 맨 마지막에 앉아있던 한 남성은 일어서지 않았다. 박 대통령이 무언가를 물었는데, 이 남성은 “참관인입니다”라고 한마디만 했을 뿐이다.

얼마 후 이 남성은 트위터에 자신의 심경을 밝혔다. 노동당 소속 투표참관인 김한울씨였다. 그는 “박근혜 대통령이 투표를 마친 후, 무책임하고 몰염치한 자가 어울리지 않게 대통령이랍시고 악수를 청하는 게 아닌가”라며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악수에 응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이어 “순간, 셔터가 연달아 터졌지만 춘추관의 보도통제로 그 사진이 보도되지는 않을 듯 싶다”라고 덧붙였다. 아니다. 이렇게 보도를 한다.

정치적 반대자에게 악수를 거부당하는 대통령의 모습은 정치 선진국에선 드물지 않다. 정색하고 “아니 감히 대통령에게!”라고 흥분하는 게 더 촌스럽다.

이명박 전 대통령도 이날 오전 자택이 있는 서울 강남구 논현1동 제3투표소에서 부인 김윤옥 여사와 함께 투표했다. 이 전 대통령이 공식 석상에 등장한 건 세월호 침몰 참사 이후 처음이다. 경기도 안산 정부합동분향소에도 조화만 보냈고, 공식 조문에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었다. 그 조화마저 유가족들의 반대로 분향소 밖으로 내보내지는 수모를 당했다.



이 전 대통령은 투표 전 신분을 확인하는 절차에서 주민등록증 대신 신용카드를 꺼내 보였다. 다행히 관계자들이 웃음을 터뜨려 유머러스하게 넘어갔지만, 보기에 따라 다른 판단을 할 수 있다. 이 전 대통령은 투표를 마친 후 논현동 주민들에게 인사를 건낸 뒤 투표소를 빠져나왔다. 이 전 대통령은 전직 대통령 가운데 유일하게 이날 투표권을 행사한 주인공이 됐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지난달 사전투표를 마쳤으며, 노태우 김영삼 전 대통령은 병을 앓고 있는 상황이다.

사진=청와대사진기자단, 국민일보DB. 이명박 전 대통령 투표 장면은 2012년 대선 당시 자료화면.

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