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日 관계 개선 급물살-이슈분석] 흔들리는 ‘공조의 틀’… 실리 외교 펼쳐야
입력 2014-05-31 02:37
박근혜정부 대북·동북아 안보정책 궤도 수정 불가피
북한과 일본이 급속도로 가까워지면서 박근혜정부의 대북 및 동북아 안보정책도 궤도 수정이 불가피해지고 있다. 특히 주변국들이 실익 적은 공조체제에 완전히 묶여 있기보다는 공조에 일부 상처가 생기더라도 적극적인 ‘실리 외교’를 펼치는 상황이어서 우리 정부도 실익 우선의 유연한 외교정책을 펼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북한과 일본의 29일 납북자 문제 재조사 합의는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국들이 최근 펼친 실리 외교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우선 미국 정부와 의회는 미사일방어체계(MD)와 관련해 동맹국인 우리의 거듭된 거부에도 불구하고 한국 측의 동참을 줄기차게 요구하고 있다. 그러는 와중에 미국은 지난 23일 몽골에서 북한과 회동을 가졌다. 회담에는 북측에서 6자회담 수석대표인 이용호 외무성 부상이 나왔고 미국 쪽에선 로버트 아인혼 전 국무부 비확산·군축담당 특보 등이 참여해 양국 현안을 논의했다.
중국과 러시아는 한국과 일본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동·남중국해의 우리 측 및 일본의 방공식별구역 내에서 해상훈련을 실시했다. 방공식별구역으로 얼굴을 붉힌 며칠 뒤 중국은 우리와 한·중 정상회담 의제를 조율했고 러시아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측근인 세르게이 나리슈킨 하원의장을 6월 초 일본에 파견한다고 밝혔다. 북방 4개 섬 반환 협상과 관련된 방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그런 움직임 와중에 북한과 일본이 수교 협상까지 염두에 둔 회동 결과를 발표한 것이다. 북한은 지난 22일에는 서해상에서 우리 함정에 포격을 한 뒤 이튿날에는 인천 아시안게임에 참가하겠다고 공표했다. 각국이 의제별로 이 나라 저 나라와 수시로 얼굴을 붉혔다 악수하기를 반복하며 실리를 챙기고 있는 셈이다.
반면 우리 정부는 6자회담과 관련해선 ‘북한 핵 능력의 고도화 차단’이 전제돼야 한다는 조건을 달아놓은 상황이어서 회담 재개까지 험로가 예상된다. 남북관계도 여전히 대북 경제제재인 5·24조치를 내걸고 있어 교류는커녕 비난전만 가열되고 있다. 일본과는 정부 당국자들조차 “최악의 상황”이라고 언급할 정도로 냉랭한 관계가 됐다. 일본의 단독플레이로 그나마 느슨하게 유지됐던 한·미·일 간 공조체제도 유명무실해질 전망이다.
때문에 전문가들은 이제부터라도 우리가 사안별로 적극적인 실리 외교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북한에 대해 좀더 유연한 방향 전환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손기웅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정부가 북한 주민들을 위한 인도적 지원에 나서는 등 북한과의 교류에 적극 나설 때가 됐다”며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로서도 체제 안정 등을 위해 일본뿐 아니라 남한과의 관계 개선에도 목말라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가장 가까운 일본과도 관계 개선이 시급하다. 일본과의 갈등이 더 커지면 유일한 동맹국이 될 미국에의 의존도가 커질 수밖에 없으며 북한과 사이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만약 미국과도 관계가 삐걱거리면 자칫 외교적 고립에 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현재 가장 좋은 관계라는 중국과도 지나친 밀월관계로 비칠 경우 미국을 자극할 수 있어 레드라인을 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미국에는 MD 참여 문제 등에선 단호한 태도를 취하되 중국에 앞선 혈맹으로서의 지위를 최대한 존중해줄 필요가 있다.
손병호 기자 bhs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