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日 관계 개선 급물살] 북한서 사전통보 못받고… 중국 위상 급격히 추락하나
입력 2014-05-31 02:38
북한과 일본이 일본인 납북자 문제 재조사에 합의한 데 대해 중국은 일본한테서는 물론 전통적 우방인 북한으로부터도 사전에 일절 내용을 통보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과 북한의 냉랭한 관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일이다.
외교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북·일 합의에 따라 가장 큰 타격을 입는 쪽이 중국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된다. 지금까지 중국은 ‘북한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나라’라는 점에서 외교적 힘을 발휘해 왔다. 하지만 향후 북한과 일본의 교류 확대로 북한의 중국 의존도가 줄어들 경우 북한을 움직일 수 있는 ‘맏형’으로서의 위상이 급추락할 전망이다.
이런 이유 때문인 듯 중국의 반응은 극히 의례적인 언급에 그쳤다. 친강(秦剛)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30일 정례브리핑에서 북일 간 납치문제 해결 합의를 어떻게 평가하느냐는 질문에 “우리는 관련 보도를 주의 깊게 보았다”고 말했다. 이어 “일·북 양측이 대화를 통해 서로의 관심과 우려를 해결하며 관계를 개선하는 것은 지역의 평화 안정에 유리하다고 인식한다”고 덧붙였다. 이는 중국이 늘상 해오던 수사에 불과하다.
다만 북한의 고립이 완화되는 게 꼭 나쁘지만은 않다는 분석도 있다. 베이징의 외교 소식통은 “중국은 북한이 고립돼 한반도의 안정을 해치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을 밝혀왔다”고 진단했다. 아울러 과거 6자회담 때 일본이 납북자 문제를 계속 의제로 거론해 어려움을 겪어왔던 점에 비춰보면 이번 북·일 합의가 6자회담 재개에는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기대감도 있다.
미국은 한국 정부와 마찬가지로 29일 오후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기자회견 전에 일본으로부터 내용을 전달받았다. 하지만 합의 과정에서 일절 사전협의가 없었다는 점에서 불쾌해하는 눈치다. 이와 관련 한·미는 6월 1~3일 워싱턴에서 고위급 회담을 가질 예정이다. 우리 측에서 황준국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이, 미국에선 글린 데이비스 대북정책특별대표가 회담에 나선다.
미국 정부는 일단 공식적으로는 “일본의 투명한 납치 문제 해결 노력을 계속 지지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젠 사키 국무부 대변인은 정례 브리핑에서 “일본을 포함해 동맹국들과 여러 문제들을 긴밀히 협력하고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합의 발표 전 일본으로부터 통보를 받았느냐는 질문에 사키 대변인은 “미리 전달받았고, (일본 측과) 정기적으로 접촉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키 대변인의 답변은 ‘일본이 북한과의 납치 문제 협상을 투명하게 공개한다면 이를 지지한다’는 미 국무부의 기존 공식 입장 그대로다. 하지만 속내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
브리핑에서 사키 대변인이 해제되는 대북 제재 내용에 대한 질문에 ‘일본 정부에 물어보라’며 답변을 회피한 것도 미국 정부의 달갑지 않아하는 단면을 드러냈다는 해석이 나온다. 브루스 클링너 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은 “일본과 관련국들은 북한이 가시적으로 약속을 이행하기 전에 제재를 철회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면서 “일본의 대북 양자제재는 최소한의 수준이지만, 그럼에도 납치 피해자 조사의 실질적 진전에 따라 조건부로 해제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베이징·워싱턴=정원교 배병우 특파원 wkch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