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영택 경주제일교회 목사 “예수 제자는 세상과 동행해야”
입력 2014-05-30 17:33 수정 2014-05-31 02:19
경주는 옛 성읍이다. 경주역은 세월의 변화에 따라 KTX 열차가 서는 신경주역에 밀려 구역(舊驛)의 분위기를 자아냈다. 역 앞은 우체국과 재래시장 등을 안은 구도심이었다.
구도심에서 천마총과 첨성대, 안압지가 걸어 30분 내외였다. 이곳 고도(古都) 사람들은 자부심이 강하고 심지도 굳다. 따라서 구한말 야소교(기독교)가 이 성읍에 들어오는 것이 서세(西勢)로 비쳤을 것이다.
그 옛 성읍 중심에 경주제일교회가 있다. 고종 32년(1902년) 선교사의 전도로 예수를 믿게 된 박수은 등 10여명이 초가삼간에서 첫 예배를 올린 것이 경주선교의 시작이었다.
역에서 중앙로를 따라 10분 거리인 경주제일교회. 6·25전쟁 직전 세워진 아름다운 석조 교회당이 반긴다. 그 옆 새 성전은 1982년 들어섰다. 지난 주일인 25일, 석조교회당을 지나 본당에 들어서자 3부 오전 11시 예배가 시작됐다.
정영택(66) 목사는 이날 고린도전서 12장 26∼27절을 바탕으로 한 ‘인간 공존’에 대한 말씀을 선포했다. 경주 양동마을 노(老)선비 같은 인상이었다. 그럼에도 어찌나 발성과 발음이 빼어나고 성량이 좋은지 강단에 선 분과 스피커로 나오는 목소리가 다른 사람이 아닌가 착각할 정도였다.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즐거워 하느니라”(고전 12:26)
정 목사는 다섯 손가락의 비유를 통해 공존의 의미를 설명했다.
“엄지 검지 중지 약지 소지(새끼손가락) 모두 우리의 지체다. 그런데 소지가 작고 연약하고 쓸모없다 하여 멸실시키면 ‘손 병신’이 되고 만다.”
따라서 우리 공동체는 한 지체의 고통을 ‘함께’해야 하고 영광도 ‘함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 몸이 그리스도의 몸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세월호 수몰 참사’를 염두에 둔 듯했다.
그는 우리가 ‘이기기를 다투는 자’(고전 9:25) 되어 공존하는 법을 잊었다고 강조했다.
“서울의 한 교회가 제자훈련을 열심히 했습니다. 그런데 훈련 잘 받아 싸움하면 뭐합니까. 기도하면 뭐합니까. 인간 공존을 이뤄내지 못했는데 말입니다.”
정 목사는 한국교회 현실에 대해 거침이 없었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등에 대해서도 쓴 소리를 했다. 정 목사의 설교에 교인들은 지그시 눈을 감고 고개를 끄덕였다. 장자교단 예배에서 느낄 수 있는 묵상하는 듯한 묵직한 분위기였다.
이날 총 3부로 진행된 예배를 통해 1200여명의 교인이 말씀을 새겼다. 성가대 옆 한쪽에선 청각장애인을 위한 수화가 이뤄지고 있었다. 경주·영천 지역에서 가장 큰 교회인데도 대형 스크린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 되레 신선했다. 때문에 교인 모두가 성경과 찬송가를 들고 강단을 주목했다.
이날 예배 후 1식 2찬으로 점심 식사를 마쳤다. 김치와 미역국이 전부였다. 늘 2찬이라고 했다. 정 목사도 예외 없이 줄 서서 밥을 받아 자리에 앉았다.
-한기총, 전국기독교총연합회(전기총)에 관한 목사님의 ‘반농담’에 교인들이 조용하던데요. 서울 사람들 같으면 웃으며 반응할 텐데요. 경주 교인들이라서 그런가요.
말문을 트기 위한 질문이었다.
“순박하고 투박해서 그렇습니다. 지역적 특성이죠.”
‘순박’과 ‘투박’이란 단어가 주는 뉘앙스로 모든 것이 설명됐다. 경주의 교인은 전통 교인의 순박함과 시골 교인의 투박함이 있다고 했다. 뿌리 같은 신앙이다.
정 목사는 이날 설교 중 작금의 교계 상황을 염려해 ‘한기총’으로 귀결되는 반농담을 통해 한국교회 문제를 지적했다.
“서울 종로5가에 가면 한기총도 있고, 전기총도 있습니다. 어느 목사님이 제게 이러더군요. ‘기관단총’도 있어야 되는 거 아니냐고요. 기독교관련단체총연합회 약칭 기관단총 말입니다. 한국교회 현실을 드러내는 유머 아닙니까.”
-그 같은 쓴 소리 쉽지 않으실 텐데요. 지금 예장 통합 부총회장이시고 오는 9월 총회장이 되시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원칙을 양심에 따라 지켜야 하는 것이 크리스천의 책무입니다. 못할 거 없죠. 목회자의 양심이 마비되어 가고 있어요. 목회자가 자신을 위해 연판장을 돌리고, 폭력을 행사하는 교회가 있어요. (제가 총회장이 돼도) 하나님의 원칙에 어긋나는 (그런 분들과) 연합 사업 안 할 겁니다.”
이날도 한기총 소속 어느 목사가 ‘세월호 희생자’를 폄훼한 발언으로 온라인상에서 비난이 쏟아지고 있었다.
-그분들의 정치적 발언으로 봐야 할까요. 교계 지도자급이라고 하는 분들의 ‘신념에 찬’ 발언이 사회와 충돌을 빚고 있습니다.
“한국교회는 지금 지도자 멸종의 시대입니다. 실수? 그거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실수를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게 문제죠. 실수보다 더 큰 실수는 실수를 인정 않는 겁니다. 서울 강북의 K교회와 강남 S교회는 싸움판입니다. 눈뜨고 볼 수 없어요. 하나님을 위해 폭력을 행사해요. 그리고 교회 안에 들어가 기도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해당 교회) 목사님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면 두 교회의 분열은 어떻게 화합하고 치유합니까? 간단합니다. 목사가 내려놓고 사임하면 됩니다. 목사가 내려놓고 아프리카 선교사로 떠난다든지 하면 됩니다. 저는 그분들께 공개서한을 보내서라도 호소하고 싶어요.”
-진보적이십니다.
“예수 제자의 길은 래디컬(radical)해야 합니다. 래디컬의 어원은 뿌리입니다. 예수의 제자는 뿌리가 송두리째 뽑힐 정도로 진보적이어야 합니다. 아버지와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를 따라야 한다는 거죠. 그게 진보, ‘진짜 보수’ 아닙니까? 하나님을 믿으면 삶의 스타일이 뿌리째 뽑혀야 하는 겁니다. 세월호 참사에서 봤듯이 능치 못할 일이 세상에 얼마나 많습니까. 능치 못할 거라며 무기력하고 무책임하게 방관하죠. 하지만 예수의 제자인 우리는 그러면 안 됩니다. 하나님과 이웃을 위한 일이라면 자신의 뿌리를 뽑아야 합니다. 세상 이슈에 동행하며 예수와 같은 ‘세상 죄인’과 끝까지 함께해야 합니다. 성경의 기본과 본질에 충실하면 됩니다.”
-석조예배당에 ‘6·25전쟁의 잿더미를 극복하고 다시 일어선 대한민국을 위해 기도하자’는 현수막이 걸렸습니다.
“지난주까지만 해도 ‘세월호 참사’ 애도 현수막이 걸린 자리였습니다. 극복했으니 이겨낼 수 있습니다. 원칙과 본질에 충실하며 기도해야죠.”
-‘시골교회 목사’라고 하셨는데 총회장이 되시면 서울 가십니까.
“안 갑니다. 지역 교회가 살아야 총회가 삽니다. 농업과 같은 1차 산업 안 되면 2, 3차 산업 잘돼도 소용없는 것과 같아요. 서울 오가며 계속 전도할 겁니다.”
주일은 목사에게 잠시도 한자리에 머물 시간이 없는 날이다. 그를 먼발치서 눈에 담다 오후 늦게야 깊은 대화가 가능했다. 대화는 ‘확인’에 지나지 않았다. 경주지역 교회 종가의 선비 목사는 투박하게 사랑을 표현했고, 교인들은 그런 목사를 존경했다.
정 목사는
경기도 양주 태생. 열다섯에 목사를 서원했다. 장신대 신학대학원 졸업. 미국 샌프란시스코신학대학 목회학 박사. 서울 소망교회 부목사와 제주 성안교회, 서울 이문동교회 담임목사 역임했다.
경주=전정희 선임기자 jhje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