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라동철] 정부조직개편 신중해야
입력 2014-05-31 02:50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29일 입법예고되면서 조직 개편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해양경찰청을 해체하고 국무총리실 산하에 국가안전처와 인사혁신처를 신설하는 게 골자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9일 세월호 참사 관련 대국민 담화에서 개편 구상을 밝힌 데 따른 후속조치다. 세월호 침몰 사고의 구조·수습 과정에서 드러난 정부의 무능과 혼선에 대한 자체 처방인 셈이다. 개정안은 입법예고를 거쳐 6월 임시국회로 넘겨질 예정이다.
안전 관련 기능을 총괄하는 별도 기구를 만들어 재난 대응의 효율성을 높이자는 취지지만 이번 조직 개편은 석연치 않은 점이 많다. 추진 과정이 즉흥적이고 일방적이다. 61년 역사를 지닌 해경을 해체하고 재난관리 전담 기구인 소방방재청을 국가안전처로 흡수시키는 등의 개편안을 1개월 만에 뚝딱 만들었다. 졸속 개편이란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세월호 참사의 충격과 해경 등 부실 대응한 조직들에 대한 불신이 크지만 정부조직 개편은 신중해야 한다. 목적과 방향, 추진 과정이 신중하고 투명해야 하는데 이것과는 거리가 멀다.
정부의 재난대응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데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하지만 그 방안이 해경 해체와 국가안전처 신설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정부의 재난 안전 기능을 한데 모은다고 해서 저절로 재난대응 역량이 강화되는 건 아니다. 지난해 박근혜정부 출범 때 행정안전부를 안전행정부로 바꾸며 재난 컨트롤타워 기능을 부여했지만 세월호 사고 때 작동하지 않은 게 단적인 예다.
새 조직에서 재난 업무 담당자들은 기존 해경과 소방방재청, 안행부 등에서 일하던 그 공무원들이다. 조직 개편 자체보다는 운영 시스템을 바꾸고 내용을 채우는 게 더 중요하다. 인력을 적재적소에 배치하고 훈련을 통해 내부 역량을 지속적으로 강화해 가는 노력이 절실하다. 재난 관련 예산을 확충하고 일선 현장의 대응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 소방관들이 화재진압용 장갑을 사비로 갖춰야 하는 열악한 여건에서 완벽한 구조 활동을 기대하는 건 염치없는 일이다. 현장에 권한과 책임을 확실하게 부여하고 지원한 뒤 결과에 대해 책임을 물으면 된다.
선진국은 정권이 바뀌더라도 조직 개편은 거의 하지 않는다. 미국의 경우 1960년 이후 신설한 정부 조직은 5개에 불과하다. 9·11테러가 발생한 이듬해인 2002년 국토안보부를 신설한 게 가장 최근의 사례다. 그것도 초당적 특별조사위원회를 만들어 1년 넘게 논의한 끝에 마련했다. 일본도 2001년 1월 50년 만에 1부(府) 22성청(省廳)을 1부 12성청으로 개편한 게 마지막인데 이를 위해 수년간의 준비기간을 거쳤다.
우리는 정부 수립 후 50여 차례 크고 작은 조직 개편을 단행했다. 1948년 정부조직법 제정 당시 조직됐던 11부 4처 3위원회 중 현재까지 명칭이 유지되고 있는 곳은 국방부와 법무부뿐이다.
조직 개편이 예고된 후 해당 공무원 조직은 좌불안석이다. “3년 후 다음 정부에서는 또 바뀔 텐데…”라는 냉소적인 반응도 나온다. 새 시스템이 자리잡는 과정에서 막대한 행정비용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6·4지방선거가 끝나면 정부조직법 개정안 등이 정치권 이슈로 떠오를 것이다. 정부가 입법예고한 개정안에서 후퇴하는 게 현실적으로 쉽지 않겠지만 열린 자세가 필요하다. 국회 논의 과정에서 야당은 물론 전문가와 현장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다수가 공감할 수 있는 개편안을 마련해야 한다. 조직 개편은 국면 전환용이 아니라 효율적인 재난관리 시스템을 마련하기 위한 수단이다.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조직 개편은 문제 해결이 아니라 실패와 분란의 불씨가 될 뿐이다.
라동철 사회2부 선임기자 rdch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