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준동] 월드컵과 몸값
입력 2014-05-31 02:49
프랑스 북부 작은 항구도시 칼레. 칼레의 역사는 ‘백년전쟁’(1337∼1453년)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파죽지세로 프랑스를 점령해 나가던 영국은 1347년 9월 칼레를 포위한다. 시민들은 11개월 동안 끈질기게 저항했지만 결국 영국에 함락되고 만다. 당시 영국 왕 에드워드 3세는 칼레 시민들의 전원 몰살이라는 무자비한 명령을 내린다. 에드워드 3세는 항복사절단의 애원을 받아들여 시민 중 여섯 명이 대표로 죽어야 한다는 조건으로 이 명령을 철회한다.
도시 지도층 인사 6명이 자발적으로 나섰고 이에 감동한 영국 왕비의 탄원으로 이들은 가까스로 목숨을 구하게 된다. 사회 지도층의 도덕적 의무를 뜻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가 바로 여기에서 유래됐다. 조각가 로댕의 걸작 중 하나인 ‘칼레의 시민(6 Bourgeois de Calais)’도 이 장면을 배경으로 만들어졌다.
인구 8만명에 불과한 이 도시는 세계축구 역사에서 ‘칼레의 기적’으로도 유명한 곳이다. 인구의 절반가량이 궁핍한 생활을 하고 있던 칼레는 2000년 5월 ‘라싱 유니온 FC 칼레’라는 팀으로 프랑스축구협회(FA)컵에 출전한다. 선수들의 면면은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시계수리공, 장식품가게 종업원, 슈퍼마켓 직원, 수도배관 기술자, 정원사, 하급 공무원 등. 그야말로 오합지졸이었다. 모두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들은 기적을 연출했다. 1부 리그 프로팀을 차례로 격파하더니 프랑스 축구 역사상 아마추어 팀으로는 처음으로 FA컵 결승까지 오르는 최고의 이변을 연출하게 된다.
지구촌 최고의 축구축제라는 월드컵이 다음 달 13일 브라질에서 개막된다. 최근 한 매체의 분석에 따르면 한국 선수 23명의 전체 몸값은 872억4516만원으로 참가 32개국 중 27위였다. 한국은 같은 H조에 속한 벨기에(4864억1500만원) 러시아(2743억원) 알제리(1091억원)에도 뒤졌다. 몸값으로 따지면 한국의 목표인 사상 첫 원정 8강 진출은 고사하고 16강도 힘들다.
하지만 공은 둥글고 몸값은 수치에 불과하다. ‘칼레의 기적’처럼 ‘코리아의 기적’이 브라질에서 일어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세월호 참사로 슬픔에 잠긴 대한민국에 희망의 불씨를 살리겠다며 30일 장도에 오른 ‘홍명보호’의 선전을 기대해 본다.
김준동 논설위원 jd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