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北日합의… 남북·한일관계도 새 국면 모색을

입력 2014-05-31 02:21

납북자 문제 재조사와 일본의 대북 독자제재 해제를 골자로 하는 북한과 일본의 합의는 우리 정부의 외교·안보정책을 다시 돌아보게 한다. 북한이 일본과의 관계 개선을 통해 외부세계로 나오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자칫 당사자인 우리만 소외될 수도 있다는 점은 우려스럽다. 경색된 남북관계가 계속되는 가운데 북핵문제 해결에도 진전이 없어 북·일의 급속한 접근은 우리의 선택 폭을 더욱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심각한 점은 북한과 일본의 이번 합의가 성과를 거둘 경우 한국으로서는 남북관계는 물론 한·일관계에서도 아무런 진전을 보지 못하는 외교·안보적 무능만 부각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일본은 박근혜정부가 출범 이후 강경 일변도로 자신을 몰아붙여 국제사회에서 공개적으로 망신을 주자 은밀히 대북 접촉을 강화해 왔다. 이번 합의도 우리 정부는 발표 직전까지 까맣게 몰랐다.

일본은 자국민 납북자 문제를 북한이 다시 조사해 주기만 하면 반대급부로 조총련과 재북 일본인 가족들의 대북 송금 및 왕래 시 현금 휴대는 물론 북한 국적 선박 입항 등의 제한 조치를 없애기로 했다. 이렇게 될 경우 유엔 안보리의 대북제재 결의안은 심각한 타격을 받아 무용지물이 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 국제사회의 대북제재가 무력화될 수 있다는 말이다.

새 외교·안보라인 유연성 무장해야

그렇지만 이번 북·일 합의를 뒤집어 생각하면 우리 정부의 대북, 대일정책을 다시 한번 가다듬는 기회가 될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내놓은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의 기본 노선격인 ‘드레스덴 선언’에 대해서도 북한이 반발하는 등 남북관계의 해빙무드가 좀처럼 올 것 같지 않은 상황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해야 할 시기가 도래했다는 뜻이다.

정부는 출범 초기만 해도 남북 및 대일관계에서 원칙적 대응을 통해 일정한 지지를 받은 적도 있다. 생떼 부리는 북한과 과거를 반성하지 않는 일본에 대한 강경한 목소리는 우리의 자존감을 만족시키는 긍정적인 면도 없지 않았지만 시간이 갈수록 효과가 반감됐으며 결국 북·일의 급속한 접근과 관련해 외부자 처지를 면치 못했다. 이제 자기만족적 강경 일변도 정책을 수정할 때가 온 것이다.

강경일변도 정책 재점검할 때 됐다

정부가 그동안 북한과 일본문제를 다루면서 이렇다 할 융통성을 발휘하지 못한 것은 정부 내 외교안보라인의 매파 목소리가 지나치게 높았기 때문이다. 군 출신들이 장악한 외교안보의 핵심 인물들이 냉전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북한과 이웃나라인 일본을 필요 이상으로 자극하는 발언만 양산한 것이 온건 합리적 노선을 지향하는 비둘기파의 입지를 좁혔다.

우리는 내적으로는 세월호 참사로 인한 후유증으로 국민들의 사기가 처져 있는데다 외적으로는 중국과 일본의 무차별적인 확산정책으로 안팎곱사등이가 돼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무총리 하나 인선하지 못해 집권층은 코너에 몰려 있고 야당은 여권을 줄기차게 몰아붙이고 있다. 국가개조를 목표로 정부조직을 새로 짠다는 계획이지만 국회를 통과하기까지는 쉽지 않는 길을 걸어야 한다. 특히 코 앞에 다가온 지방선거의 결과는 여야간 다시 한번 첨예한 대결의 장을 만들 수 있기도 하다.

다행인 점은 마침 새 외교·안보 라인을 구축해야 할 시점을 맞았다는 사실이다. 이번에는 좀 더 유연한 사고를 가진 민간 출신을 중용해 변화무쌍한 대북 및 국제관계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전략을 구사했으면 한다. 또 장기적으로는 북·일 개선 움직임이 남북 및 북·미관계 개선에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 올 수 있기 때문에 마냥 심각하게 생각할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도 잊지 말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