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의 희망지기-이상룡 이혜련 선교사 부부] 모국어는 가슴의 언어
입력 2014-05-31 02:41
가슴으로 쓴 성경이라야 말씀도 살아있어
세계의 지붕, 히말라야에서 이들의 존재는 각별하다. 평균 고도 2000m. 고산 마을에 살면서 전 세계 등반가들의 도우미로 알려진 사람들, 셰르파. 인구 30만명으로 추정되는 주민들은 티베트불교(라마교)의 영향 속에 독특한 문화를 이루고 있다. 이들에겐 한 가지 불편이 있었다. 말은 있었지만 표기할 글자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서 모국어 대신 어려운 공용어를 배워야 했다. 그런데 지난달 셰르파에게 기념비적 사건이 일어났다. 고유 문자로 쓰인 책 한 권이 출간된 것이다. 셰르파족(族) 최초의 신약성경이다. ‘동쪽 사람(東人)’이란 뜻의 셰르파 주민들이 공동체를 이룬 지 600년 만이다.
이 성경을 만든 ‘세종대왕’은 다름 아닌 한국인. 이상룡(60)·이혜련(60) 선교사가 그 주인공이다. 셰르파어 신약성경을 봉헌한 이 선교사 부부를 지난 29일 서울 동작구 성경번역선교회(GBT) 사무실에서 만났다.
성경 번역, 이래서 필요하다
이 선교사가 보여준 성경은 훌륭했다. 갈색 가죽 표지엔 험준하게 생긴 산과 구름이 그려져 있었다. 그림 위엔 셰르파어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쓰여 있었다. 한국의 대한성서공회가 인쇄를 맡았다. 종이 질은 웬만한 한글 성경보다 우수해 보였다. 한 장 한 장 넘기니 손에 착착 감겼다. 인쇄 상태도 깨끗했고 중간에 들어간 삽화는 인상적이었다. 판화를 연상시켰다.
이 선교사는 “삽화는 미술을 전공한 딸아이가 그렸다”며 “셰르파 문화를 그대로 반영해 현지인들이 맘에 쏙 들어한다”고 말했다.
셰르파 주민들이 살고 있는 남아시아 A국은 언어가 다른 종족만 100여개라고 한다. 이 때문에 소수 종족은 공용어를 배워야 한다. 그래서 이중언어 사용자들이 많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든다. 공용어 사용이 가능한데 굳이 모국어 성경을 번역할 이유가 있을까. 차라리 공용어 성경을 만들어 배포하면 다른 100개 종족도 하나님의 말씀을 읽지 않을까.
이 선교사는 그 질문을 기다렸다는 듯 바로 대답했다. “다들 그렇게 생각하지요. 이번엔 제가 질문할게요. 영어성경이 있는데 왜 한글 성경을 읽습니까?”
그는 “셰르파 사람들에겐 공용어 성경도 있어요. 하지만 아무리 공용어에 능통해도 가슴에 와 닿지 않는다”며 “우리는 가슴의 언어(heart language)를 존중하고 그 언어로 성경을 읽을 때 가장 잘 이해가 된다고 본다”고 말했다.
“한국인이 영어를 배워서 영어성경만 읽는다고 생각해 보세요. 우리말 성경과 영어 성경 중에 어느 것이 더 가슴에 와 닿을까요. 자기 엄마에게 배운 언어가 아니라 학교에서 배운 언어는 거리감이 있습니다. 바로 모국어 성경이 있어야 할 이유입니다.”
질곡의 번역 역사
이 선교사가 지난 26년간 눈물과 땀을 흘린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었다. 엄마의 말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주자는 것. 사실 이 선교사는 셰르파어 성경 번역 작업에 처음으로 뛰어든 선교사는 아니었다. 이미 앞서간 선교사들이 있었다. 모두 서양 선교사들이었다. 4가정이나 됐다. 하지만 고난이 있었다. 안타까운 이야기는 47년 전인 1967년으로 돌아간다.
첫 번째 팀은 호주 출신의 질스트라 선교사였다. 그는 활동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돼 간질에 걸려 귀환해야 했다. 이듬해 도착한 사람은 미국 출신 고든 선교사. 극한 환경 속에서 건강이 악화돼 선교지를 옮겼다. 다시 1년이 지나 도착한 사람은 독일의 세털런드라이어 선교사. 그는 비교적 순조롭게 일을 시작했는데 마가복음을 번역하던 중 강제 추방을 당하고 말았다. 네 번째 팀인 노르웨이 웬들 선교사가 도착한 것은 84년이었다. 애석하게도 이들 역시 3년 뒤 선교사역을 중단하고 말았다. 집을 수리하다가 지붕에서 떨어지는 바람에 하반신 마비가 됐고 얼마 후엔 암까지 발병, 세상을 떠나면서 성경 번역 사역은 그대로 멈추는 듯했다. 이 선교사가 도착한 것은 그 무렵이었다.
88년 5월, 현지에 도착한 이 선교사 부부는 외로움이 밀려왔다. 전임자들도 꿈을 이루지 못한 곳. 교회도 그리스도인도 없는 땅. 말로만 듣던 미전도지역이었다. 두려움과 긴장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로부터 5년 동안은 믿는 사람들이 하나도 생기지 않았다. 93년 말에 가서야 딱 한 명이 전도가 됐다. 이 선교사 부부는 그와 함께 ‘셰르파 펠로십’이란 기도모임을 만들어 미래의 셰르파 교회를 시작했다.
번역은 자신과의 싸움
번역 작업은 책상에 앉아만 있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순수 셰르파어를 사용하는 주민을 만나 정확한 발음과 의미를 확인해야 하고 단어의 선택도 신중해야 했다. 똑같은 말이라도 문화 차이 때문에 의미가 완전히 달라졌다.
“일반명사나 고유명사도 어렵지만 추상 명사의 경우 난감할 때가 많습니다. 용서라는 단어의 경우 셰르파 말에는 신이 사람을 용서한다는 말은 있지만 사람끼리 적용하지 않습니다. 사랑이란 말도 신이 인간을 사랑한다는 것은 도무지 이해가 불가한 것이었습니다. 신은 인간을 심판하고 정죄하는 존재이지 사랑하는 존재가 아니거든요. 그래서 어려웠어요. 단어 의미를 일일이 가르쳐야 했습니다.”
번역은 시간과의 싸움이기도 했다. 현지에서 오랫동안 머물러야 가능했기에 안정적인 체류도 중요한 문제였다. 그의 전임자 중엔 강제 추방된 예도 있었다. 외국인에게 배타적이었던 A국은 이 선교사를 끊임없이 감시했다. 오래 머물 수 있는 수단이 필요했다. 그렇게 해서 시작한 게 사전 출간 프로젝트였다.
성경번역 선교사들은 사실상 언어학자이다. 음성학과 음운론 등 기본적인 언어학 공부를 선교사훈련 기간에 배우게 되고 몇 권의 책 분량에 해당되는 성경 번역 지침도 철저히 익혀야 한다. 이 선교사는 이러한 경력으로 A국 정부에 사전 출간을 제안했고 이것이 받아들여지면서 10년간 사전을 편찬하는 일을 병행했다.
이 선교사는 “시간은 많이 들고 힘들었는데 현지 정부와 신뢰를 쌓을 수 있었다”며 “당시 제작한 사전은 최초의 A어-한국어 사전”이라고 말했다. 99년 613쪽짜리 사전은 이렇게 완성됐다. 이 같은 사전 제작은 현지 정부에 신뢰를 주었고 관련 학자들이 적극 이 선교사를 보호했다. 사전은 A국 언어를 처음 배우는 사람을 위한 것으로 현지어와 영어발음기호, 한국어로 편집됐다. 이 사전은 현재 한국인 여행객이나 교민들의 필수품이 됐다.
이 선교사는 “사전 편찬 작업을 할 때만 해도 한국어로 된 여행 책자 하나 없었다”며 “성경번역 작업에 써야 할 10년을 사전 편찬과 병행해야 했지만 허송세월은 아니었다. 최선을 다했다”고 회고했다. 부인인 이혜련 선교사도 2000년 회화(會話)집을 집필했다. 이들은 두 번째 사전 작업도 시작했다. 셰르파어와 A국 공용어, 한국어 사전 편찬을 진행 중이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이 선교사가 성경번역 사역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영화를 통해서였다. ‘마운틴 오브 라이트(Mountain of Light)’라는 영화로, 미국 선교사가 파푸아뉴기니에 들어가 성경을 번역하는 과정을 그린 내용이었다. 감명을 받은 그는 86년 12월, 선교사로 임명받아 싱가포르에서 언어훈련을 받았다.
어려움도 많았다. 가장 힘든 것은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단기적인 성과 없는 번역 일에 매진하는 것은 인내가 필요했다. 괴로웠다. 40세 중반을 넘어서자 무력감이 엄습했다. 비자문제 없이 선교하는 다른 선교사들이 부러웠다. 10년 걸릴 일을 20년 넘게 걸린 것도 답답했다. 50세를 넘기면서는 탈진과 불면증까지 찾아왔다. 자존감마저 흔들렸다.
신약성경 봉헌은 이 모든 문제를 일시에 해결했다. 또 후원교회의 지지도 한몫했다. 그를 후원해온 한 목회자는 “성경 번역이 원래 그런 것 아닙니까. 10년이 걸리든 20년이 지나든 우리는 선교사님 돕습니다”라며 거들었다고 한다.
이 선교사는 신약성경 봉헌은 시작에 불과하다고 했다. 문자를 모르는 셰르파 사람들이 쉽게 쓰도록 가르쳐야 한다. 또 셰르파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는 고산지대 마을 전도도 시급하다. 수년 전부터 셰르파인 전도자를 보냈지만 아직 한 명의 전도 열매가 없었다. 이 선교사는 앞으로 직접 마을에 들어가 주민들의 필요를 채우며 관계를 형성하려고 한다.
그 접촉점을 히말라야 산에서 나무가 사라지는 것에 착안했다. 그는 나무로 연료를 삼아온 셰르파 주민들에게 대체 에너지 공급이나 나무심기 캠페인을 벌이는 것도 선교라고 말했다. 이 선교사는 “히말라야를 살려 셰르파인들의 삶이 지속되기를 바라고 있다”며 “이를 위해 대체연료를 개발하고 산림의 중요성을 계몽하고 위생 문제를 해결할 한국의 전문가들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저는 히브리서 4장 12절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다고 믿습니다. 선교지에서 이 말씀을 수없이 암송하면서 정말 그러한가를 생각했습니다. 셰르파 사람들의 집은 띄엄띄엄 있어서 복음이 전해지는 것도 오래 걸릴 것입니다. 하지만 살아 운동력이 있는 말씀이 언젠가 그 집들을 찾아다니며 복된 소식을 전할 것이라 확신합니다.”
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