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노트-오인숙] 무엇에 도취하여 사는가
입력 2014-05-31 02:11
배울 것이 있어서 중년 연령의 여인들이 모이는 모임에 나갔다. 그녀들은 늘 여행이야기로 모임을 시작했다. 이야기의 마무리는 여행 중에 한 쇼핑에 대해서였다. 그녀들은 여행에 도취되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소식이 끊겼던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요즘 클래식 음악에 심취해 있다고 했다. 우리 이웃의 아무개는 테니스에 미쳐 직장까지 그만두었다고 했다. 밤새 컴퓨터 게임을 한 청소년들이 지하철 안에서도 눈알이 빨개진 채 게임을 하고 있다. 모처럼 가족 외식을 하려고 음식점에 갔더니 음식을 맛있게 먹으며 대화를 하는 가족보다는 각자 스마트폰으로 열심히 문자를 날리는 진풍경이 보인다. 모두들 무엇엔가 도취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인간은 무엇엔가 도취해야만 살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잠시 멈춰 서서 ‘나는 무엇에 도취하여 사는가’를 생각을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한 가지에 지나치게 도취하면 중독이 된다. 도박장에 없는 것이 세 가지 있다고 한다. 창문과 거울과 시계라고 한다. 세 가지가 없는 이유를 나름대로 생각해 본다. 창문이 없는 것은 남이 열심히 정직하게 사는 모습과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볼 수 없게 만들고 계절의 유혹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해서인 것 같다. 거울이 없는 것은 현재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없게 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헝클어진 머리. 핏발이 선 눈, 그런 현재의 자아상을 외면해야만 도박에 심취할 수 있을 것이다. 나를 본다는 것은 외면뿐만 아니라 내면까지 본다는 것이며 이는 두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시계가 없는 것은 시간을 의식하지 못하고 세월이 흘러간다는 것, 소중한 오늘이 무의미하게 지나간다는 것을 의식하지 못하게 하기 위함인 것 같다. 미하엘 엔데가 쓴 ‘모모’에는 시간 도둑이 나온다. 우리는 무언가에 도취하여 살면서 시간을 도둑 당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보이는 것에 도취하여 보이지 않는 것들을 놓치며 사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보게 된다.
오인숙(치유상담교육연구원 교수·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