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하 칼럼] 땅에 엎드려 잡초를 뽑는 이유

입력 2014-05-31 02:10


요즘 잡초와 전쟁이다. 일일이 잡초를 뽑아내야 하는 이유가 있다. 다른 농작물을 해치거나 성장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이웃 농부들은 내 밭에서 자라는 잡초를 보고 내 근면함과 게으름을 따진다. 농작물은 은총으로 자라지만, 잡초는 주인의 게으름 덕에 자라기 때문이다. 며칠 서울에라도 다녀오면 송곳 꽂을 땅 없이 잡초가 자라니 더욱 이웃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게다가 풀씨들은 고스란히 인근 밭으로 날아가 피해를 주기 십상이다. 잡초와 공생할 수 없는 이유다.

사실 농작물들은 야생 들풀과 견주어 뿌리와 줄기가 연약하다. 성장도 기대 외로 더디다. 햇빛과 바람, 물과 흙 등 농부가 골고루 헤아려주고, 돌봐야 자란다. 생육과 성장을 돕기 위해 이랑에 검정 비닐을 씌우고 구멍을 내어 씨앗을 심거나 모종을 한다. 조금 자라면 옆에 지지대를 세워 묶어준다. 그러면 잡초의 훼방을 조금은 예방할 수 있다. 자연 그대로 자라도록 내버려두고 싶지만 기왕 하는 농사, 제대로 하고 싶다는 마음이 앞선다. 발묘조장(拔苗助長)이란 말도 있지만, 스스로 자라도록 내버려두기에 이 시절 농사환경이 너무 각박하다.

그런데 잡초는 하루아침에도 부쩍 부쩍 웃자란다. 비갠 다음 날은 ‘우후죽순’이란 말이 어울릴 정도로 그야말로 온 밭에 빼곡하게 들어앉았다. 얼마나 거칠고, 뿌리가 튼튼한지 쉽게 손으로 뜯어내지 못한다. 대개 농부들은 이를 다 감당할 수 없으니 우선 낫으로 잡초를 베어내고, 그 위에 농약을 뿌린다. 아예 손쉽게 농약부터 손이 가기도 한다. 밭은 넓디넓고, 사람 손은 달리니 이해 못할 입장이 아니다.

그나마 원예 수준인 내 밭은 겨우 손바닥만 해서 일주일 동안 종일 밭에 엎드려 있으면 웬만한 잡초는 대강 뽑을 수 있다. 평소 생명, 자연 친화, 창조질서를 설교하던 사람으로서 차마 농약을 뿌리지는 못한다. 일말의 양심이랄까. 그럼에도 무성한 잡초들의 극성스러운 도전 앞에서 농약에 대한 유혹은 시시각각 내 양심의 문을 두드린다. 다 뽑아냈다고 안심하는 순간, 또다시 자라나기 때문이다.

고향 강화도 역시 본격적인 모내기철에 접어들었다. 어느덧 선거철은 금세 지나가겠지만, 농번기는 한도 끝도 없어 보인다. 모내기가 북쪽에서 시작하여 남쪽으로 남하한다면, 벼 베기는 남쪽에서부터 북쪽으로 북상하며 진행된다. 일조량에 따라 모내기 등고선이 존재하는 까닭이다. 게다가 수도권과 가까운 지리적 배경 때문에 강화도 농부들의 일손은 언제나 부족하다.

지금은 모내기철이지만 비가 질금질금 온 탓에 봄 가뭄 염려가 물웅덩이마다 그득하다. 물이 부족한 논을 바라보는 농부들은 속을 태운다. 내 경우에는 논농사를 짓지 않지만, 이젠 같은 동네 사람의 처지에서 모른 척할 수 없다. 그렇다고 달리 할 수 있는 방법도 없다. 그냥 같이 하늘을 쳐다보고, 마음으로 시름하는 것뿐이다.

어린 시절, 겨우 모내기를 끝내면 그때부터 가뭄과 씨름해야 한다는 말을 듣곤 하였다. 어른들은 갓 꽂은 어린모들의 목이 타들어가는 소리가 마른 논바닥에서 들린다고 하였다. 그때는 어림잡아 찔레꽃이 피는 계절이었다. 어느 시인은 찔레나무의 가시 속 흰 꽃무리에 주목하기를, 그것은 “분노의 가시가 아니라 용서의 하얀 꽃”이라고 비유하였다(이원규 ‘찔레꽃’).

물 없는 메마른 논이 한심하듯, 메마른 황토밭에 무성한 잡초를 보면 원수가 따로 없다. 그냥 내 밭의 아우성뿐이라면 참아낼 만하다. 찬찬히 기도하는 마음이라면 모두 뽑아낼 수 있다. 조금의 인내심과 뜨거운 볕 아래 약간의 수고가 필요할 뿐이다. 그런데 온 나라에 웃자란 잡초들은 어찌 다 솎아낼 수 있을지 잠이 안 온다. 제대로 살펴보면 우리의 평화를 잠식하고 있는 그 무성한 잡초는 우리 안에도, 우리 밖에도 사방 없는 데가 없다.

세월호를 침몰시킨 것은 바로 그 잡초들이었다. 이윤 극대화에만 몰두한 자본의 탐욕이니, 먼저 살겠다고 빠져나온 선장과 선원의 비양심이니, 책임 회피에만 급급한 당국의 무능함이니, 독버섯처럼 자란 사이비 종교의 폐해니, 소금 구실을 못해 온 우리 교회의 부작위니, 이런 잡초들의 속성을 일일이 주워섬기기도 벅차다. 황폐한 땅에 분노의 가시만 자라는 듯싶다.

잡초와 작물을 구분해야 한다. “너희 묵은 땅을 갈고 가시덤불에 파종하지 말라.”(렘 4:3) 지금은 잘못 심은 것을 뽑아낼 때이다. 더 이상 부릴 여유가 없다. 잡초는 금세 가시덤불이 되어 세상을 뒤덮겠지만 생명, 정의, 평화와 같은 싹들은 여전히 연약하기 때문이다.

(사단법인 겨레사랑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