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 토크] 아기의 힘
입력 2014-05-31 02:50
원시 부족사회에서 외지인이 방문했을 때 행하는 환영 의식이다. 온몸에 무늬를 그린 전사들이 창과 활 같은 무기를 든 채 춤을 춘 다음, 귀여운 아이들이 나와 야자나무 잎을 양손에 쥐고 흔들며 외지인을 맞는 것. 국빈을 맞이하는 현대 국가들의 환영 의식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잘 훈련된 의장대의 사열과 함께 예포가 울려퍼지면 예쁘게 차려입은 어린이들이 나와 꽃바구니를 건넨다. 즉, 전사의 위협적인 춤과 의장대의 사열 및 예포 등으로 자기의 힘을 상대방에게 과시한 뒤 꽃을 든 아이들을 내세워 상대의 공격성을 누그러뜨리며 유대감을 형성하는 것이다.
세계 어느 민족이든 귀여운 아이들을 보며 행복감을 느끼지 않을 사람은 없다. 한 연구 결과에 의하면 아기 사진 등의 귀여운 것을 봤을 때 인간의 뇌는 불과 7분의 1초 만에 쾌락을 관장하는 부위가 활성화된다고 한다. 실제로 영국 하트퍼드셔 대학 연구팀의 실험에서 지갑 안에 아기 사진이 있을 경우 가족이나 노인 사진이 들어 있을 때보다 분실 시 되돌려 받을 확률이 훨씬 더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일본 연구팀의 연구 결과 아기나 귀여운 동물 사진을 볼 경우 게임이나 숫자를 찾아내는 과제를 주었을 때 그것을 해결하는 정신 능력이 더 높아지는 것으로 밝혀졌다. 연구진은 그 연구보고서에 ‘가와이이의 힘’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가와이이는 일본어로 귀엽다는 뜻이다.
또한 최근 미국에서 발표된 새러 하디 박사의 논문에 의하면 인간이 다른 유인원과 구분되는 협업 능력을 갖게 된 이유가 바로 ‘귀여운 아기’ 때문이라고 한다. 즉 귀여운 아기를 가족 모두가 함께 키우며 협업과 조정 능력이 발달했으며, 아기 역시 그런 보살핌 덕분에 인지 능력을 발달시킬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귀여운 아이들을 내세운 예능 프로그램들이 요즘 TV 시청자들의 인기를 독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통계청 발표에 의하면 올해 1∼3월 출생아 수가 전년 대비 2.3% 감소한 것으로 나타나 올해 출생아 수가 역대 최저 수준일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또 의료정책연구소는 지난해 산부인과 폐업률이 223%라는 보고서를 냈다. 즉 산부인과 의원 한 곳이 개업하는 사이 2.3곳이 문을 닫았다는 소리다. 심지어 지난해 서울대 의대를 졸업한 의사 중 산부인과 지원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모두가 행복해지는 사회가 되기 위해선 아기들의 울음소리가 더 커져야 한다.
이성규(과학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