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방 묘연 ‘훈민정음 상주본’ 공개되나… “소유권 확보 땐 공개 용의”

입력 2014-05-30 03:35

국보급 문화재 훈민정음 해례본을 훔친 혐의로 기소된 고서 수집가 배모(51)씨에 대한 무죄 판결이 확정됐다. 배씨는 29일 대법원의 무죄 판결 이후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여건이 갖춰지면 보관 중인 해례본을 공개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6년여 동안 행방이 묘연했던 해례본 상주본의 존재가 확인될지 주목된다.

경북 상주에 거주하던 배씨는 2008년 7월 집수리 도중 훈민정음 해례본을 발견하고 문화재청에 신고했다. 세종 28년(1446) 훈민정음 반포와 동시에 출간된 해례본은 서울 간송미술관에 소장돼 있는 국보 70호 간송본이 유일 판본으로 알려져 있었다. 상주에서 새로운 해례본이 발견됐다는 소식에 학계는 술렁였고 상주에서 발견됐다는 의미로 ‘상주본’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문화재청은 당시 상주본에 대해 “가치를 따질 수 없는 무가지보(無價之寶)이지만 굳이 가치를 따지면 1조원이 넘는다”고 감정했다. 간송본에는 없는 표기·소리 등에 대한 주석이 있어 학술적 가치가 높다는 평가도 받았다.

하지만 상주본의 소유권을 둘러싼 법정 분쟁이 벌어지면서 상주본은 자취를 감추었다. 배씨 집 아래층에서 골동품점을 운영하던 조모(2012년 사망)씨는 배씨가 가게에서 고서적을 사면서 상주본을 훔쳤다고 주장했다. 조씨는 배씨를 상대로 민사 소송을 냈고, 대법원은 2011년 5월 “배씨는 조씨에게 상주본을 돌려주라”는 확정 판결을 내렸다.

법적 소유권을 잃은 배씨는 보유하고 있던 상주본의 행방에 대해 입을 다물었고, 문화재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다. 배씨는 2012년 2월 징역 10년형을 받고 구속됐으나 상주본을 공개하지 않았다. 검찰과 법원은 앞서 상주본의 행방을 찾기 위해 압수수색 등 강제집행에 나섰으나 상주본을 찾는 데 실패했다. 조씨는 2012년 5월 상주본을 문화재청에 기증했다. 실물이 없어 서류상 이뤄진 기증이었다.

같은 해 9월 항소심에서 무죄 선고를 받은 배씨는 ‘누명을 벗으면 상주본을 공개할 수 있다’는 입장이었다. 대법원 3부(주심 민일영 대법관)는 29일 배씨의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배씨는 판결 직후 “상주본의 소유권을 돌려달라는 취지의 재심 청구를 검토하겠다”며 “재판을 통해 소유권을 돌려받게 되면 세상에 공개하는 등의 타당한 절차를 밟을 생각”이라고 밝혔다. 현재 상주본의 법적 소유권은 조씨 측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숨진 조씨가 기증 절차를 밟았지만 상주본이 문화재청에 넘어온 것이 아니라 문화재청에 법적 소유권은 없다”며 “국가적으로 중요한 문화유산인 만큼 배씨가 상주본을 공개하면 보관 등을 위한 지원을 아끼지 않을 생각”이라고 밝혔다. 배씨는 상주본의 행방과 보관 상태를 묻는 질문에는 “아직 밝힐 단계가 아니다”고 말했다.

나성원 기자 na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