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대희 사퇴 정국-이슈분석] 대놓고 ‘왕실장’ 퇴진 거론… 黨·靑갈등 중대 기로

입력 2014-05-30 04:54


안대희 전 국무총리 후보자 낙마가 당·청 갈등의 기폭제로 작용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여당 안에 청와대를 향한 불신과 무력감이 퍼지던 상황에서 터진 이번 일로 당·청 간 균열이 더 벌어졌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청와대 인사위원장을 겸하는 김기춘 비서실장을 겨냥해 야당을 중심으로 나왔던 퇴진론이 이제는 여당에서도 공공연하게 불거지는 실정이다.

새누리당 김성태 의원은 29일 평화방송 라디오에 출연해 “박근혜 대통령이 국정쇄신 의지를 분명히 보여주기 위해선 내각과 청와대 비서진 전면 개편이 그 첫걸음이 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특히 ‘김 실장도 개편 대상에 포함돼야 하느냐’는 질문에 “엄정한 국민들 시선에서 어느 누구도 개편·쇄신에 예외가 돼서는 안 된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어 “읍참마속(泣斬馬謖)의 심정으로 철저한 인적 쇄신을 단행해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같은 당 이철우 의원은 YTN 라디오 인터뷰에서 “총리 후보자가 사퇴할 정도가 됐으면 청와대 인사위원장이 스스로 전혀 책임이 없다고 하는 것은 잘못”이라며 “본인(김 실장)도 그렇게 느낄 것”이라고 주장했다.

친박(친박근혜)계 내부에서도 ‘이상 징후’가 감지된다. 한 친박 의원은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청와대가 국정 운영과 정국의 큰 그림을 전혀 그리지 못하고 있다”고 질타했다. 그는 “상황이 이 지경이 됐는데 김 실장을 향해 인사검증 실패 책임론이 쏠리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흐름”이라고 강조했다.

박근혜정부 출범 이후 새누리당은 때때로 청와대를 비판했지만, 그 비판은 청와대 참모진을 향해 ‘대통령을 제대로 모시지 못하고 있다’는 포괄적인 메시지 정도였다. 하지만 이제는 박 대통령을 가장 가까이서 보좌하는 청와대 ‘왕’비서실장을 직접 거론하는 것을 넘어 책임 소재를 따지고 퇴진 요구까지 제기하는 상황이 됐다.

앞서 6·4지방선거 경선, 국회의장 후보 선출 국면 때 비박계가 약진하고 친박 인사들이 고전하자 여당이 청와대와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는 관측이 나왔었다. 세월호 침몰 사고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정부가 무능한 모습을 보인 것은 결정적 계기가 됐다. 여기에 김 실장이 인사 검증을 주도하고 박 대통령이 직접 낙점한 총리 후보자가 지방선거를 불과 1주일 앞둔 시점에 불명예스럽게 물러나자 청와대를 바라보는 당의 시선이 더욱 차갑게 식어가는 분위기다.

당·청 관계 회복 여부는 결국 지방선거 성적표가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수도권 광역단체장 선거에서 전패하거나 영남 텃밭 중 한 곳이라도 내줘 새누리당 패배가 확실해질 경우 당이 청와대로 책임의 화살을 돌릴 가능성이 높다. 연이어 실정(失政)의 중심에 서는 청와대에 등을 돌리는 것이 낫다는 여론이 당내에 퍼지고, 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더 이상 여당의 버팀목이 되지 못한다는 인식이 굳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지방선거에서 전체 승패를 따지기 애매한 스코어가 나오거나 적어도 새누리당이 선방했다는 평가를 받는다면 여당과 청와대 간 ‘결별’ 속도는 늦춰질 수 있다. 이 경우 여당 차기 지도부를 선출하는 7·14전당대회 결과가 당·청 관계의 열쇠를 넘겨받게 된다. 박 대통령이 추후에 단행할 후속 총리 및 국가정보원장 후보자 인선과 청와대·내각 쇄신 카드도 당·청 관계의 주요 변수로 꼽힌다.

유성열 기자 nukuv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