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 난 것 알텐데…” 자녀들 무관심에 더 깊은 상처… 장성 요양병원 또 다른 그늘
입력 2014-05-30 03:58
전남 장성 효실천사랑나눔요양병원 화재 사고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환자들의 표정은 생각보다 밝지 않았다. 30명 가까이 사상자가 발생한 참사 이후에도 안부를 묻는 가족의 연락이 뜸해서다. 상당수는 치매 중풍 등 간병이 어려운 질병을 앓고 있는 탓에 가족 관계가 소원해진 지 오래였다. 이들은 참사 현장인 별관과 붙어 있는 본관 병실에서 지내고 있다. 동료 환자들이 21명이나 죽어간 공간을 바라보며 심리적 고통과 공포를 감내해야 하는 형편이다.
사고 이틀째인 29일 오후 본관 1층은 한적했다. 입원 환자들은 TV 앞에서 드라마를 보거나 복도를 걸어 다니며 시간을 보냈다. 그중엔 화재 당시 별관에 있다가 대피한 환자들도 있었다. 환자들은 대형 참사에 대한 바깥세상의 관심과는 달리 철저히 소외돼 있었다. 참사를 간신히 벗어난 이들을 찾아오는 가족은 거의 없었다. 어쩌다 한 통씩 전화만 걸려왔다. 별관에 있다 대피한 이모(60) 할아버지는 “현대판 고려장”이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최모(84) 할머니도 마찬가지였다. 최 할머니는 사고 당시 별관 2층에서 같은 방을 쓰던 노인 4명과 함께 위험천만한 상황에서 벗어났지만 안부를 물어온 가족은 남동생(81)밖에 없다고 했다. 최 할머니는 “남편이 전처와 낳은 아들이 있었는데 미국 유학까지 보냈지만 연락이 끊긴 지 30년이 넘었다”고 말했다.
본관 병실에서 생활해온 한 할아버지(68)는 “우리 애들은 사고 나고 찾아왔는데 주변을 보니 자식들이 코빼기도 비치지 않는 사람이 많다”며 “자식들이 가까이 살면 바로 와서 보기라도 하지만 멀리 떨어진 가족들은 대부분 오지 않는다”고 전했다.
병원 측의 사고 뒷수습 과정 역시 허술하다. 대피한 환자들을 본관의 빈 병실에 머물게 한 채 아직 건강검진도 제대로 진행하지 못하고 있다. 사고 수습에 매달리느라 겨우 목숨을 건진 환자들의 몸과 마음까지 신경을 쓰지 못하는 상황이다.
18년 경력의 한 소방관은 “아무리 건장한 사람도 연기를 한번 마시면 정신이 몽롱해지면서 상황판단 자체가 안 된다”며 “숨을 꾹 참았더라도 유독가스를 한번 흡입하면 의식을 잃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화재 당시 유독가스가 순식간에 건물을 집어삼켰고, 별관에서 대피한 환자들은 그 타격을 피하기 어려웠던 터라 건강상태를 점검해 봐야 한다는 것이다. 화재 현장 주변은 여전히 매캐한 연기가 코를 찔렀다.
익명을 요구한 병원 관계자는 “그래도 노인들한테 자식 얘기를 물어보면 우리 아들이 곧 연락할 거라며 끔찍이도 자식들을 챙긴다”고 말했다.
백상진 기자 shark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