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불났을 당시 일부 환자 손, 침대에 묶여 있었다”… 장성 요양병원 참사 ‘人災’ 가능성
입력 2014-05-30 03:57
29명의 사상자를 낸 전남 장성 효실천사랑나눔요양병원(효사랑병원)은 화재사고 당시 비상계단이 막혀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환자들의 탈출을 어렵게 하고 인명피해를 키운 요인으로 지목된다. 또 일부 환자들이 침대에 신체가 묶여 있었다는 증언도 나왔다. 경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사망자 21명 전원에 대한 부검을 의뢰하는 한편 효사랑병원에 대한 압수수색을 실시하고 안전관리 과실 여부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사고 당시 별관 1층 관리사무실에 있다가 불이 난 3층에서 구조작업에 참여했던 이모(60)씨는 29일 국민일보 기자와 만나 “병원에서 비상계단을 폐쇄했다. 화재가 난 3006호 다용도실 옆에는 지상으로 내려갈 수 있는 계단이 있는데 잠겨 있었다”고 증언했다. 그는 “치매나 중풍 환자들 특성상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비상계단을 잠가놓은 게 이해는 간다”면서도 “하지만 이것은 소방법규를 어긴 것”이라고 말했다. 이씨는 “비상계단 폐쇄로 환자들의 탈출이 어려웠을 뿐더러 유독가스가 밖으로 빠져나가는 데에도 악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비상계단은 지난 21일 장성보건소의 안전점검 당시에도 폐쇄돼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보건소 관계자는 “병원 별관에 대한 안전점검 시 폐쇄돼 있던 비상구가 한 곳 있었다”고 말했다. 병원이 ‘화재 시 대피할 수 있는 비상계단을 항상 개방해야 한다’는 ‘소방시설설치유지 및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 10조를 위반한 것이다.
이씨는 풍으로 이 병원에 3년 넘게 입원한 환자였으나 상태가 호전된 뒤 지난 2년 동안 사실상 건물관리인처럼 간호사·간호조무사들을 도우며 생활해 왔다. 이씨는 사고 당일 0시25분쯤 병원 별관 1층 관리사무실에 있다가 간호조무사로부터 “불이 났으니 도와 달라”는 전화를 받고 진화 작업에 나섰다. 이씨가 3층으로 올라갔을 때 이미 복도에는 시커먼 연기가 가득 차 있었다고 한다. 그는 바닥에 엎드린 채 복도 쪽으로 손전등을 비추며 “내 소리가 들리면 이 불빛을 따라 나오라”고 소리쳤다. 3명의 환자가 이씨의 말을 듣고 밖으로 탈출했다.
소방대원이 도착한 뒤에도 구조 작업은 혼선을 빚었다. 마음이 급했던 소방대원들이 환자들을 침대에 실은 채 병실 밖으로 옮겼다. 복도는 침대로 가득 차 환자 이송에 차질을 빚었다. 이씨는 “별관 복도는 침대 2∼3대만 놓여도 길이 막힌다”며 “침대들을 다시 안으로 밀어 넣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고 말했다. 이씨는 “소방대원에게 ‘시트로 환자를 둘러싼 뒤 둘러업고 뛰라’고 소리쳤다”고 전했다.
이씨는 구조작업 과정에서 손이 침대에 밴드로 묶인 환자도 발견했다고 밝혔다. 그는 “소방대원들이 침대에 누워 있는 환자들을 구출하는 과정에서 한 분의 손이 침대에 묶인 것을 봤다”며 “간호사 데스크에 있는 가위를 들고 가 직접 끈을 잘라줬다”고 말했다. 이 환자는 별관 3층에 있는 1인실 두 곳 중 한 곳에 있었던 환자로 추정된다. 이씨는 “1인실 병동에 있는 환자들은 병세가 심해 평소에도 손발을 묶어놓는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유가족들은 그동안 “환자들의 손을 묶어 놔 제대로 대피하지 못해 화를 입었다”며 의혹을 제기해 왔다. 김정현 유가족대표는 “우리도 이씨의 증언과 비슷한 얘기를 들었고 관련 사진도 확보해 놨다”며 “병원 측에서 자꾸 방화 쪽으로 몰고 가지만, 증거들을 차근차근 모아 병원 측에 사고 책임을 따질 것”이라고 답했다. 경찰 관계자는 “현장검증 과정에서 치료차 쓰인 것으로 보이는 압박붕대를 발견했지만 신체를 결박했다는 명확한 증거는 찾지 못했다”며 “시신 부검 결과가 나오면 신체 결박 여부가 확인될 것으로 본다. 의혹이 제기된 만큼 명확하게 사실여부를 밝히겠다”고 말했다.
이씨는 부족한 인력도 문제였다고 지적했다. 그는 “간호조무사 1명이 환자 35명을 돌보는 게 말이 안 된다”며 “근무자가 1명만 더 있었더라면 한 명은 화재 진압, 한 명은 창문을 열며 환기를 시켜 사상자를 줄였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광주=황인호 기자 inhovato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