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박병권] 毛遂自薦의 묘미

입력 2014-05-30 02:51


“부국강병의 요체는 법치가 아닌 법을 지키려는 국민들의 의지에 달렸다”

법치주의와 법가사상은 상당히 닮은 것 같지만 원리는 사뭇 다르다. 법가의 원조는 한비자다. 나라를 인정으로 다스릴 수 없다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중국의 전통적인 유가사상과는 어떤 의미에서는 대척점(對蹠點)에 놓여 있다. 인을 중심으로 하는 유가를 우습게 여기고 법질서를 강력히 유지해 부국을 만들자는 논리다.

사실 유학을 근본으로 삼은 국가 가운데 성공한 나라는 드물다. 길바닥에 돈이 떨어져도 줍지 않았던 요순시대라면 모를까 시장경제가 웬만큼 발달한 이후에는 공자의 덕치주의가 먹혀들기 어렵다. 천하를 주유하며 주군을 찾아다닌 공자의 정성은 갸륵하지만 그를 받아들인 왕이 없다는 역사적 사실을 회고하면 유학은 통치철학으로서는 부적합 판정을 받은 것이나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정치(政治)를 정(正)이라고 주장한 공자의 외침은 현실에서는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했다. 오히려 철저한 법에 의한 통치를 주장한 이사(李斯)의 도움을 받은 진나라가 천하를 통일했다. 정치 전략가인 이사는 여러 가지 술책으로 주변국을 혼란에 빠뜨리고 중국 역사상 최초의 통일왕국을 완성했다. 그 자신은 비참한 최후를 맞았지만 법가의 실효성을 제대로 증명한 것이다.

이런 연유인지 모르겠지만 우리도 국가 기강을 논할 때는 어김없이 법치주의를 외친다. 법에 의한 통치를 말하는 것인데, 엄격히 말하자면 모든 것을 법으로 해결하자고 하는 것은 일견 상당히 민주적일 것 같지만 실은 강자의 논리일 수도 있다. 구태여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을 빌려오지 않더라도 법은 강자가 약자를 합법적으로 지배하는 수단으로 기능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강조하건대 통치철학으로서의 법치주의가 만능은 아니란 말이다. 가령 세월호 참사나 그 이후 잇달아 터진 크고 작은 사건이 우리나라의 법과 제도가 미비해 발생했다고 보이지는 않는다. 오히려 법을 지키려는 공동체 구성원들의 의지가 더 중요한 것 아닐까. 따라서 법률가들이 중용되는 사회는 겉으로는 강해 보일지 몰라도 속은 그렇게 탄탄하지 못한 면도 있다.

법조인 출신들이 잇따라 국무총리 물망에 올랐다가 청문회에 서 보지도 못하고 물러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윗사람을 잘 받들어 모시는 것이 습성화된 법조인 출신을 박근혜 대통령이 선호하는 것은 이해가 된다. 그렇지만 이제는 좀 달라져야 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어려운 일을 당해 스스로 그 일을 맡고 나선다는 뜻으로 사용되는 모수자천이란 말이 있다. 수도 한단(邯鄲)이 진나라에 포위당하자 초나라에 구원병을 청하러 가게 된 조나라 평원군이 식객으로 있던 모수를 데리고 간 경위를 설명한 고사에서 비롯됐다. 처음에는 좋은 의미로 쓰였지만 요즘에는 의미가 바뀌어 일의 전후도 모르고 나서는 사람을 가리키기도 한다. 어쨌든 공직 후보 검증서를 보내자마자 덥석 오케이 사인을 보내는 인물은 중용하지 말았으면 한다.

모수자천과 함께 거론되는 고사성어에 낭중지추(囊中之錐)란 말도 있다. 국무총리감과 같은 뛰어난 인재는 주머니 속의 송곳과 같아서 가만히 있어도 드러난다는 말이다. 어쨌든 모수는 식객 노릇 3년 만에 제 밥값은 했다고 한다. 어렵긴 하겠지만 낭중지추를 찾는 수고를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종종 거론되는 책임총리도 섣불리 입에 올릴 것은 아니다. 대통령이 운용하기 나름이겠지만 실패하기 쉽다. 만기친람(萬機親覽)형인 박 대통령에게 맞지도 않을 것이다. 한비자에 이미 그 단점이 상세하게 나와 있다. 군주의 금지사항 첫 번째로 권한을 신하에게 빌려주지 말 것을 강조하고 있다.

즉, 군주가 권세를 잃게 되면 그것을 이용하는 신하는 백가지의 권세를 만들어 쓰고, 신하가 권세를 빌려 쓰게 되면 권력을 많이 지니게 되고, 그 권력을 안팎으로 휘두르게 되며, 권력을 안팎으로 휘두르다 보면 군주는 독에 갇히는 처지가 된다고 일갈하고 있다.

박병권 논설위원 bk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