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이명희] 소방관의 눈물

입력 2014-05-30 02:52

지친 표정의 한 남자가 보도블록에 주저앉아 왼손에는 마시다 만 물병을 쥔 채 새까맣게 그을린 오른손으로 눈을 닦고 있다. 방화복과 얼굴, 손은 온통 검정 투성이고, 옆에는 소방헬멧과 장갑 등이 놓여 있다. 최근 고양시외버스터미널 화재 사고를 진압하고 인명을 구조한 뒤 쉬고 있는 한 소방관 사진이다. 화재 사고가 잇따르면서 이 사진과 함께 우리나라 소방관의 열악한 현실을 풍자한 만화가 인터넷을 달구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소방관이 기피직업군이지만 미국에서는 미국을 지켜주는 ‘영웅’ 대접을 받으며 올해도 어린이 장래희망 직업 3위를 차지했다. 소방관 1인당 관리하는 국민 수는 미국보다 260여명이 많고, 소방 예산에 대한 국비 지원 비율은 1.8%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인 67%에 턱없이 부족하다. 2008년부터 2012년까지 순직한 소방관은 35명, 자살한 소방관은 32명에 달한다.

현직 소방관들이 올린 댓글은 황당하다. 한 소방관은 사진 속의 방수화 말고 긴급 구조구급 활동할 때 신는 활동화가 다 떨어져 신발 지급을 요구했더니 예산이 다 떨어져 불가능하다며 2년이 다 되도록 지급이 안 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다른 소방관은 화재진압장갑은 6개월 쓰면 너덜너덜해지는데 현재 3년째 지급이 안 되고 있어 아마존에서 영국제로 화재용 구조용을 각각 1년에 2개씩 사비로 구입해 쓰고 있다고 했다. 한 소방관의 아내는 남편이 같은 일을 하는데 사주려 한다며 아마존에서 구입한 제품을 알려달라고 했다. 불 끄러 가는데 필수적인 보급품을 받지 못해 개인 돈 들여 아마존 직구를 한다니 기가 막힌다.

그제 새벽 전남 장성 요양병원 화재 구조작업에 투입된 한 소방관의 사연이 가슴을 울린다. 40대 소방관 아들은 비번이어서 집에서 잠을 자고 있다가 화재현장 출동 지시를 받고 요양병원으로 달려갔다. 치매를 앓던 70대 아버지가 별관 2층에 계시다는 걸 알았지만 다른 환자들을 구조하느라 곧장 아버지에게 갈 수 없었고, 동료들에게 아버지를 구해달라고 부탁할 수도 없었다. 결국 아버지는 사망했다.

“아무리 강렬한 화염 속에서도/ 한 생명을 구할 수 있는 힘을 제게 주소서/ (중략) 그리고 신의 뜻에 따라 저의 목숨을 잃게 되면/ 신의 은총으로 저의 아내와 가족을 돌보아 주소서.” 어느 미국 소방관이 썼다는 기도문처럼 오늘도 소방관들은 죽음을 무릅쓰고, 가족을 돌보지 못한 채 불꽃 속으로 뛰어들지만 국가는 무엇을 해주고 있는지 참담하기만 하다.

이명희 논설위원 mhe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