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는 KBS의 파행

입력 2014-05-30 02:41

KBS(한국방송)의 파행이 노조의 전면 파업 돌입으로 장기화될 조짐이다. KBS 이사회(이사장 이길영)는 29일 길환영 사장 해임제청안에 대한 표결을 6월 5일로 연기했다. KBS 이사회는 28일 오후 4시부터 열린 정기이사회에서 제안사유 중 ‘공정성 훼손’ 부분 등을 놓고 9시간 동안 격론을 벌였지만, 표결처리 여부에 대한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이에 따라 KBS 노동조합(기존 노조)과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새 노조)는 29일 오전 5시 공동 파업에 돌입했다. 직원 80%가 소속된 두 노조의 공동 파업은 2010년 노조가 분리된 이후 처음이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기까지 정부, 길 사장, 이사회, 노조 등이 모두 크든 작든 책임이 있다. 세월호 참사 등의 보도에서 청와대의 ‘보도방향 개입’을 자초한 것으로 알려진 길 사장은 어떻게든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길 사장은 지금까지 드러난 언행만 보더라도 공영방송 최고책임자로서 지녀야 할 최소한의 권위와 자격을 상실했다. 게다가 그는 기자와 PD들은 물론 간부들과 노조 등 거의 모든 내부 구성원들로부터 철저한 불신을 받고 있다.

공영방송인 KBS의 주인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국민이다. TV 수상기를 보유하면 KBS를 보든 안 보든 상관없이 내야 하는 수신료는 사실상 준조세다. 혈세로 운영하는 방송사의 노조가 아무리 옳은 명분을 위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파업을 통해 시청자의 권익을 해치는 것은 용납될 수 없다. 노조원과 간부들은 즉각 업무에 복귀해야 한다. 길 사장 해임제청안 표결을 연기한 이사회도 임무를 방기했다. 중대한 결정을 6·4 지방선거 이후로 미룸으로써 선거에 미치는 영향을 차단하기 위한 ‘시간 끌기’라는 비판을 살 수밖에 없다.

정홍원 국무총리는 지난 21일 국회 긴급현안질의에서 “홍보수석이 ‘지금 사태가 위중하니까 수색에 전념할 수 있도록 잠수사들 사기를 올려 달라’며 협조요청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해 보도협조 관행을 시인했다. 또한 다른 언론이 일제히 질타한 해경의 문제점을, 전 KBS 보도국장의 폭로처럼 대통령비서실에서 축소해 보도하라고 KBS를 압박했다면, 이는 권력에 의한 방송 개입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청영(靑營)방송 논란을 불식시키도록 청와대의 개입여부를 낱낱이 밝혀야 한다.

그 다음 이사회를 비롯한 거버넌스(지배구조)와 인사 및 프로그램 편성에 공공성을 강화하는 제도적 대안을 모색하고 바람직한 공영방송의 청사진을 마련해야 한다. 이사회를 지금처럼 여·야당 추천 인사들로 구성할 게 아니라 시민사회와 각계각층의 대표성을 지닌 인사들을 고루 참여시킬 필요가 있다. 공영방송이 민영방송과 똑같이 개그와 오락 프로그램, 막장 드라마를 방송할 필요가 있는가. KBS의 방만한 경영에 대한 수술도 빠뜨리면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