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남도영] 검찰은 선발투수가 아니다

입력 2014-05-30 02:23


검찰은 지난 21일 관피아 척결을 위해 전국 지방검찰청에 특별수사본부를 설치하고 전방위 수사를 예고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대국민 담화를 통해 ‘민·관 유착 척결’을 선언한 지 이틀 만에 나온 후속 조치였다. 지난해 5월 30일에는 부산지검 동부지청에 ‘원전비리 수사단’을 꾸려 원전 비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역시 박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원전은 우리 국민의 안전과 직결되는 정말 중요한 문제다. 확실한 원인 규명과 책임 소재를 분명히 밝히라”고 지시한 지 이틀 만에 나온 행동이었다.

세월호 침몰 사고도 해결사는 검찰이었다. 선장과 선원들, 청해진해운 관계자들, 항만관리 기관들,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일가 계열사 관계자들이 모조리 구속·기소되고 있다. 게다가 세월호 침몰 원인 규명 작업도 목포에 차려진 검·경 합동수사본부가 구성한 전문가 자문위원단이 담당하고 있다. 박 대통령이 취임 초부터 강조해온 사회 4대악(성폭력 가정폭력 학교폭력 불량식품) 척결도 검찰의 몫이다.

관피아 척결, 원전비리 척결, 4대악 척결은 모두 좋은 일이다. 범죄를 척결하자는데 반대할 일이 없다. 관피아는 뿌리 뽑아야 하며, 원전비리를 저지른 범죄자도 모조리 감옥에 보내야 하고, 서민생활을 침해하는 민생사범들도 엄단해야 한다.

실적면에서도 검찰은 무능하지 않았다. 검찰은 원전비리 범죄자 126명을 기소했고, 불법 사금융·채권추심 범죄자, 서민상대 갈취사범 등 민생사범 2만여명을 잡아들였다. 세월호 사고 수사도 유 전 회장 일가를 잡지 못해 스타일을 구기고 있지만 나머지 관련자들은 그야말로 발본색원 수준이다. 대통령이 지시하면 검찰이 움직이고, 성과까지 나오는 공식이 안착됐다. 그래서일까. 요즘 권력 핵심부에서는 검찰에 대한 칭찬의 말들이 많이 나온다고 한다.

그런대로 일이 굴러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가끔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원전비리는 범죄자 100여명을 잡아넣는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노후한 원전을 폐기할 것인가 새로 고쳐 쓸 것인가, 국가의 장기 전력 구조를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원전 사고가 벌어질 경우 충분한 안전 대책이 마련돼 있는가를 검토할 일이다. 지난해 원전비리 범죄자를 모조리 잡았다는 기사는 많이 나왔어도 정부와 민간이 원전의 미래를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있다는 기사는 보지 못했다. 민생사범 2만명을 잡았으니 대한민국의 민생은 안심해도 될까.

박 대통령은 지난 22일 국가개조의 상징 인물로 안대희 전 대법관을 선택했다. 국가개조는 국민적 합의 아래 진행되는 것이고, 대개 정치적 대타협을 동력으로 추진된다. 박 대통령은 정치적 대타협이라는 어려운 길 대신 ‘가장 잘 드는 칼’이라는 안 전 대법관을 선택했다. 서슬 퍼렇게 범죄를 단죄하는 ‘국민검사’의 이미지로부터 국가개조의 동력을 확보하겠다는 구상이었던 것 같다. 구상은 실패했다. 전관예우 등의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문제가 생기면 검찰을 쓴다는 무의식적인 반응이 작동한 사례라고 지적하면 확대해석일까.

검찰은 조직의 성격상 선발투수와는 거리가 멀다. 범죄를 예방하거나 대책을 마련하는 기관이 아니다. 범죄가 발생한 이후에야 이를 처벌하는 기관이다. 선발투수보다는 오히려 구원투수 개념에 가깝다. 요즘 많은 국가적 현안에 검찰이 해결사로 투입되는 것을 보노라면 구원투수가 4회에 등판하고, 포수나 대타로도 기용된다는 느낌이다. 프로야구가 초창기에는 투수가 야수도 하고 홈런도 쳤다지만 지금은 21세기다.

남도영 사회부 차장 dy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