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이혜진] 숨쉴 수 있는 권리
입력 2014-05-30 02:23
나는 무던한 편에 속한다. 민박집 이불이 지저분해 날을 새다시피 한 선배 옆에서 이불을 돌돌 말고 꿀잠을 잘 정도였으니.
그런데 내게도 딱 하나, 예민한 것이 있는데 바로 냄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고 출퇴근을 할 수 있게 되었을 때 가장 좋았던 것이 바로 불특정 다수의 ‘냄새’로부터 해방된 점이었다. 향긋한 냄새야 기분 좋게 음미한다지만 찌든 담배 냄새에서 술 냄새 등 여러 사람이 있는 공간에서 향기를 기대하는 일이 쉽지 않다. 불쾌해지는 것은 약과고 자꾸 그 냄새에 신경이 쏠리면서 머리가 아파지고 멍해진다. 실제 냄새같은 감각 자극들이 사람들의 스트레스 지수를 높인다는 연구 결과는 상당하다.
내가 일하는 홍익대 주변은 사람들이 몰리는 곳이다 보니 주택가와 사무실이 밀집한 뒷골목까지 카페와 음식점들이 줄지어 들어서고 있다. 볼 것, 먹을 것, 마실 것 많은 ‘핫’한 곳에서 일한다는 즐거움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사무실 앞에 생긴 음식점들에서 뿜어내는 냄새 때문에 후각에 빨간불이 켜진 것이다. 매캐한 연기와 고약한 냄새로 창문을 열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후시간대가 되면 사무실 안까지 냄새가 스며들어와 눈이 맵고 두통이 생긴다. 유난한 내 코가 또 발동이 걸렸나 하는 것은 기우였다. 동료들은 물론이고 일대의 다른 사무실에서도 그런 문제를 호소하는 이들이 많았다. 문제는 환풍시설에 있었다.
자연 바람이면 충분한 이른 더위에도 에어컨을 켜야 하고 미세먼지와 황사의 공습으로 숨쉬기 답답한 요즘엔 삼중고가 따로 없다. 에너지 소비와 스트레스가 동시에 올라가는 이 현상이, 인구 밀도가 높은 대도시에서 일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겐 피할 수 없는 문제일 것이다. 그러나 가만 생각해 보면 무언가 더 잘 먹고 더 누리자는 여러 일들이 오히려 더 많은 피해와 낭비를 일으키는 것은 부자연스럽다.
숲 속 피톤치드를 기대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최소한의 쾌적한 호흡과 환기 가능성마저 사라져가는 지금, 나는 생명이 숨쉴 수 없는 암울한 도시의 미래까지 극단적으로 상상해 본다. 중국에서 유행한다는 호흡산소캔이 필수품이 되는 일쯤은 당연한 수순일지 모른다. 그러니 누구랄 것 없이 모두 무언가를 하려고 하기 전에 무엇을 하지 않아야 하는지를 먼저 고민했으면 좋겠다. 그것이 공생과 공존의 가장 기본 원칙이니까 말이다.
이혜진(해냄출판사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