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이야’ 순간 못끄면 다 죽는다는 생각만”… 도곡역 방화 진화한 서울메트로 권순중 대리

입력 2014-05-29 03:38

서울 지하철 3호선 도곡역 화재 사건이 제2의 대구 지하철 참사로 이어지지 않은 것은 현장을 끝까지 지키며 화재를 진압한 역무원이 있어서였다. 승객들이 대피하는 순간까지도 현장을 지키며 혹시 있을지 모를 추가 사고를 막아냈다.

서울메트로 권순중(46) 대리는 28일 오전 10시51분쯤 지하철 3호선 매봉역에서 도곡역으로 가는 열차에 탑승했다. 다음 정차역이 도곡역이라는 안내 방송이 흘러나오자 내릴 준비를 하며 열차 4번째 칸의 노약자석 옆에 섰다. 그 순간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노약자석 바로 옆에서 가슴 높이까지 불길이 치솟았다. 놀란 승객이 “불이야”라고 외쳤다.

권 대리는 본능적으로 불이 난 곳으로 달려가 소화기를 집어 들었다. 가방 안에 미리 시너를 준비해 온 조모(71)씨가 재판 결과에 불만을 품고 불을 붙인 뒤였다. 권 대리는 소화기로 불을 끄는 동시에 승객들에게 “비상벨로 화재신고를 해 달라”고 요청했다. 불이 꺼지자 조씨는 다시 라이터를 켜서 시너에 불을 붙였다. 또 권 대리가 다시 소화기를 들지 못하게 몸을 붙잡아 당기며 방해하기까지 했다. 간신히 화재를 막을 때마다 조씨는 이런 방법으로 세 차례나 불을 붙였다.

권 대리는 “경황이 없어 아무 기억이 나지 않는다. 범인과 몸싸움을 한 것조차 기억나지 않는다”며 “불과 나의 전쟁이었다. 불을 끄면 살고 못 끄면 다 죽는다는 생각만 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권 대리가 불을 끄자 다른 시민들도 다른 객차에서 소화기를 가져다 건네는 등 진화를 도왔다.

540여명이 타고 있던 열차여서 큰 참사로 이어질 뻔했지만 권 대리의 노력으로 별다른 인명 피해 없이 화재는 6분 만에 종료됐다. 권 대리는 “객차 내 물건들이 모두 불에 타지 않는 소재라는 것을 알고 있어서 초기 진화만 잘하면 잡을 수 있다고 확신했다”고 말했다.

세 차례의 방화 끝에 조씨가 도주한 순간 화재를 감지한 기관사가 열차를 도곡역에 세워 시민들은 승강장으로 대피했다. 권 대리는 시민들이 대피하는 와중에도 역에 비치된 소화전을 이용해 남은 불을 정리하며 혹시나 있을 추가 사고에 대비했다. 그는 “영웅 같은 게 아니라 누구든지 다 할 수 있었던 일”이라며 “큰 사고로 이어지지 않아 감사할 뿐”이라고 밝혔다.

김유나 기자 spri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