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병원 화재 참사] 치매환자 ‘사고’ 늘어나는데… 30만명 관리 사각지대에
입력 2014-05-29 03:27
28일 전남 장성 효실천사랑나눔요양병원(효사랑요양병원) 화재는 80대 치매 환자가 저지른 방화로 추정된다. 지난달 5일 부산의 노인요양시설에서도 70대 치매 환자가 같은 병실 환자를 살해한 사건이 있었다. 이런 일이 잇따르는 건 과연 ‘치매’ 때문일까. 전문가들은 치매를 범죄의 원인으로 연결짓는 건 무리라고 진단한다. 근본 원인은 치매 환자가 화기에 접근하도록 놔두고, 돌볼 인력이 부족해 치매 환자들끼리 지내도록 방치했던 안전관리상 허점에 있다는 것이다.
◇바늘구멍 통과해야 정부 지원 받는 치매 환자…사각지대 30만명=지난해 말 기준 국내 치매 환자는 58만명이다. 하지만 정부 지원을 받는 환자는 17만명 정도에 불과하다. 정부가 7월부터 ‘치매특별등급’을 마련해 경증 치매 환자도 지원하기로 했지만 추가로 혜택을 받는 건 5만명쯤이다. 30만명은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제도는 마련돼 있지만 실제 이용하기까지는 어려운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특히 노인요양시설에 들어가려면 장기요양등급 2급 이상을 받아야 한다. 신체기능과 인지기능에 모두 문제가 있는지 까다롭게 평가해 등급을 매긴다. 지난해 말 기준 13만명이 1∼2급을 받았고, 시설에서 생활하는 노인은 11만명이다. 이 가운데 치매 환자는 7만∼8만명으로 추정된다.
노인요양시설 입소라는 바늘구멍을 통과해도 체계적인 돌봄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치매는 ‘전형적인 증상’이 없다. 사람마다 다르고 예측하기도 어렵다. 집에 가는 길을 잊는 등 인지기능에 문제가 많이 생기지만 행동장애가 오기도 한다. 이런 경우 사소한 일에도 공격성을 드러내거나 폭력적인 성향을 보인다.
한양대 의대 신경과 김희진 교수는 “치매 초기부터 중기까지 과격한 행동이나 화기로 인한 사고가 흔히 일어난다”며 “이런 분들은 약물치료를 하거나 의료진의 세심한 관리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치매 정도가 아주 심한 경우엔 누군가를 때린다거나 불을 내는 등 의도적인 행동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요양시설에서 치매 노인을 돌보는 요양보호사들 중에 치매 전문가는 거의 없다. 정부가 치매특별등급을 신설하면서 요양보호사에게 연간 80시간씩 교육을 시키기로 했지만 이 정도로는 치매 환자를 이해하고 돌보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엉망으로 관리되는 노인요양병원=효사랑요양병원은 각종 질환 치료를 목표로 하는 ‘병원’이다. 요양병원에는 요양시설에서 요양보호사의 돌봄을 받다가 의사의 치료가 필요해 옮겨온 중증 노인 환자들, 등급을 얻지 못해 요양시설에 들어갈 수 없는 치매·중풍 환자들이 주로 입원해 있다.
요양병원을 찾는 노인들은 요양시설에 입소한 이들보다 신체적·정신적 건강이 더 나쁘거나 비슷한 수준이다. 하지만 관리는 오히려 허술하게 이뤄지고 있다. 요양시설은 의무적으로 스프링클러를 설치해야 하는데 요양병원은 스프링클러 설치 의무가 없다. 중소병원 수준으로 관리되고 있어서다. 노인 환자가 주로 입원해 있다는 특수성이 전혀 감안되지 않은 것이다.
의료 서비스의 질도 낮은 편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조사 결과 요양병원 의사 한 명당 담당 환자는 평균 31명이었다. 의사 한 명이 환자 65명을 맡는 곳도 있었다. 간호사 한 명당 환자는 평균 11명이었고, 최대 47명인 곳까지 있었다.
현재 전국에 1262개 요양병원이 있다. 정부가 지난해부터 실시한 요양병원 인증 제도에 따라 보건복지부 인증을 받은 곳은 255곳에 불과하다. 효사랑요양병원은 지난해 말 복지부 인증을 받았다. 인증을 받은 곳에서 이런 대형 사고가 발생한 걸 보면 인증 평가도 ‘대충대충’ 이뤄졌을 수 있다.
문수정 박세환 기자 thursd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