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병원 화재 참사] 홀로 불길 속으로… 끝까지 환자 지킨 천사

입력 2014-05-29 03:36

28일 새벽 전남 장성 효사랑요양병원 화재 현장에선 세월호 사고와 정반대 상황이 벌어졌다. 승객들을 버리고 탈출한 세월호 선장과 달리 야간 당직근무 중이던 50대 간호조무사는 비상벨이 울리자마자 소화기를 집어 들고 불을 향해 달려갔다. 거동이 불편한 환자들을 대신해 홀로 화염과 맞서던 그는 연기에 질식해 끝내 숨을 거뒀다.

간호조무사 김귀남(52·여·사진)씨는 병원 별관 3층에서 다른 직원 한 명과 당직근무를 하고 있었다. 한 달에 서너 번 돌아오는 야근이 마침 이날이었다. 0시27분쯤 화재 비상벨이 요란하게 울렸다. 다급히 주위를 둘러보니 복도 맨 끝 3006호에서 불길과 연기가 새어 나왔다. 김씨는 함께 있던 직원에게 “119에 신고하고 본관에 알려 달라”고 말한 뒤 소화기를 들고 3006호로 다급히 뛰어갔다.

다용도실로 쓰던 3006호에는 침대 매트리스와 각종 의약품 포장재 등이 많이 쌓여 있었다. 석유화학 제품이어서 불이 옮겨 붙으면 순식간에 엄청난 양의 검은 연기와 유독가스가 발생한다. 소화기 하나로 이 불길과 맞섰던 김씨는 곧 복도를 뒤덮은 연기와 가스에 고스란히 노출됐다.

소방차가 현장에 도착해 초기 진화를 끝내기까지 6분이 걸렸다. 그 사이 김씨는 의식을 잃고 3층 복도에 쓰러졌다. 건물 안에 진입해 잔불 제거와 구조 작업을 벌이던 구급대원이 김씨를 발견하고 급히 밖으로 데리고 나왔다. 응급 처치를 한 뒤 광주 신가병원으로 옮겼지만 끝내 숨지고 말았다.

이날 신가병원에 차려진 그의 빈소에는 대한간호조무사협회장이 보낸 화환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김씨의 언니는 “다들 밖에 나왔다는데 왜 넌 안 피했니”라며 울부짖었다. 유족들은 그가 늘 봉사활동을 하며 지냈다고 했다. 친구 같은 엄마였고 천사 같은 동생이라고 목 놓아 울었다.

“엄마가 다른 사람들한테 너무 퍼주는 게 싫었는데….” 빈소에서 만난 그의 딸(29)은 복받치는 울음 탓에 쉽게 말을 잇지 못했다. 얼마나 울었는지 얼굴엔 온통 눈물자국이 가득했다. 그는 “엄마는 항상 큰 욕심 없이 봉사하며 살아온 분”이라며 “(내가) 내일 집에 가니까 보자고 약속했었는데…. 엄마 사랑해. 엄마 사랑해. 엄마 어떡해 이제”라며 오열했다.

전남 광양 출신인 김씨는 결혼 전 간호사였다. 남매를 키우느라 그만뒀다가 6∼7년 전부터 다시 간호조무사로 병원 일을 시작했다. 그의 언니는 “젊어서부터 보육원 봉사활동을 꾸준히 해왔는데 간호조무사가 되더니 요양병원에 취직했다. 어르신들 보살펴드리는 게 보람이라서 그랬다더라”고 했다.

장성=백상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