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병원 화재 참사] 치매 아버지 입원 현장 소방관 구조 매뉴얼 지키다 끝내… 안타까운 사연들
입력 2014-05-29 03:33
전남 장성 효실천사랑나눔요양병원(효사랑요양병원) 화재 현장에 투입된 119 소방대원의 아버지가 이 병원에 입원해 있다가 아들이 진화 작업을 벌이는 도중 숨졌다. 이 소방관은 진화·구조에 방해가 될까봐 동료들에게도 아버지의 입원 사실을 숨긴 채 작업에 매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담양소방서 소방관 홍모씨는 28일 새벽 효사랑요양병원 출동 지시를 받았다. 서둘러 현장으로 가면서도 불안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치매를 앓는 70대 아버지가 이 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현장에 도착하자 불이 난 곳은 아버지가 입원해 있던 별관 3층이었다.
홍씨는 당장 아버지에게 달려가고 싶은 마음을 억눌러야 했다. 그랬다간 현장 질서가 무너지고 동료들이 위험에 처할 수 있다는 생각에 꾹 참고 매뉴얼대로 구조 작업에 참여했다. 초기 진화가 완료된 뒤 아버지 행방을 찾았지만 이미 병원에 실려 간 뒤였다.
홍씨는 “오전 4시쯤 병원에서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았는데 믿기지 않는다”며 “현장의 구조 원칙을 지키기 위해 아버지를 구하는 대신 맡은 임무를 수행해야 했다”고 울먹였다. 소방서 관계자는 “아버지의 병실에 먼저 들어가지도, 동료들에게 대신 구해 달라고 부탁하지도 못한 채 구조작업에 나선 심정이 어땠을지 헤아리기 어렵다”고 말했다.
사상자 29명 대부분은 치매·중풍·와상 환자 등 혼자는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이었다. 70·80대가 19명으로 절반이 넘었다. 그동안 뒷바라지에 힘겨웠던 유족들은 “힘들어도 집에서 모실 걸 잘못했다”며 후회와 죄책감에 또다시 눈물을 흘렸다.
동생을 잃은 임모(66)씨는 “동생이 입원한 지 20일도 채 안 됐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서울 근교 요양병원으로 옮기려다 고향 근처인 이곳에 보냈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그대로 계속 돌볼 걸 그랬다”며 눈물을 훔쳤다.
환자 김모(69)씨의 아내는 사고 소식에 버선발로 뛰어왔다가 남편이 다행히 목숨을 건졌다는 소식에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남편의 모습은 숯을 바른 것처럼 까맸다. 그는 “남편이 우측 뇌경색으로 몸 한쪽이 마비된 상태다. 휠체어 아니면 움직이지 못하는데 그래도 다행”이라며 눈물을 훔쳤다.
임채휘 유가족 임시 대표는 병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몇몇 고인의 팔목에 결박당한 흔적이 있다”고 주장했고, 일부 유가족은 수면제 등의 과다 투여 의혹도 제기했다. 유가족들은 “80여명이 입원한 병동에 간호조무사 1명만 배치한 건 명백한 병원 과실”이라며 진상규명을 요구했다.
광주=황인호 기자 inhovato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