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내일을여는집’ 노숙인 자활교육 현장 가보니… 독방 쉼터 제공, 직업교육 ‘원스톱 강의’

입력 2014-05-29 03:25


“여러분이 했던 모든 일을 빠짐없이 써보세요. 1∼2개월만 했던 아르바이트까지 모두 적어야 합니다.”(문병인 인천고용복지나눔회 회장)

28일 오전 10시 인천 계양구 계양산로 ㈔인천내일을여는집(이사장 이준모 목사) 2층의 한 방에서는 보습학원 강의실을 방불케 하는 장면이 연출됐다. 방 안에 모인 남녀 18명은 한 사람만 뚫어지게 쳐다봤다.

이 자리에 모인 이들은 모두 인천지역의 노숙자들이다. 이들은 ‘이력서 작성법’을 배우기 위해 오전부터 이곳을 찾았다. 난생처음 듣는 이력서 작성법이 신기한 듯 강사인 문 회장의 말을 한마디도 놓치지 않으려고 애썼다. 문 회장도 이들의 집중력에 감동해 자신의 개인 연락처까지 스스럼없이 알려주며 성격유형 분석까지 돕겠다고 나섰다.

강의가 끝난 후 숙제도 주어졌다. 오는 30일까지 이력서를 모두 작성해 제출하라는 것이다. 윤모(61)씨는 “평생 이력서를 제대로 써본 적이 없는데 예순이 넘어서 처음으로 이력서를 쓰게 됐다”며 “막상 쓰려니 그동안 뭘 하고 살았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아 쉼터에 돌아가 생각해 보려고 한다”고 웃었다.

하루 벌이도 빠듯한 노숙자들이 강의에 참석한 것은 인천내일을여는집이 지난 19일부터 고용노동부의 지원으로 ‘노동통합형 사회적 기업’으로 바뀐 덕분이다. 이곳은 1998년부터 인천지역 노숙인들을 도와 쉼터와 상담서비스를 제공해 왔다. 그러나 구직 방법과 기술을 체계적으로 배우지 않는 한 노숙인들이 자활을 하기는 어려워 지난주부터 직업교육을 시작했다.

시작한 지 열흘밖에 되지 않았지만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노숙자들의 반응은 긍정적이다. 프로그램에 참여만 해도 월 30만원의 보조금을 받을 수 있다. 정모(57)씨는 “열심히 배워서 제대로 된 일자리를 갖고 싶다”면서 “이력서뿐 아니라 각종 기술도 배울 수 있어 아주 재미있다”고 말했다.

이날 오후 2시쯤 인천 부평구의 한 여인숙에는 50대 노숙인 둘이 가방을 둘러메고 찾아왔다. 여인숙을 관리하는 인천내일을여는집 이대영 실장은 이들과 잠깐 상담한 뒤 방 하나씩을 선뜻 내줬다. 여인숙을 찾은 A씨는 이날 거리로 내몰린 지 1년 만에 처음으로 독방을 쓰게 됐다.

인천내일을여는집은 여러 사람이 방 하나를 함께 쓰는 쉼터에 적응하지 못한 노숙자들을 위해 여인숙을 통째로 빌린 뒤 지난 26일부터 제공하고 있다. 인천시와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이 사업을 도왔다. 여인숙 내에서 1주일에 1회씩 상담과 교육도 실시한다. 여러 명이 살을 부대끼지 않아도 된다는 소리에 인천지역 노숙자들의 문의가 잇따르고 있다. 다만 재활 의지가 없어질 수 있어 최대 사용기한은 3개월로 제한했다.

이준모 목사는 “이전의 노숙자 프로그램은 잘 곳을 마련해주고 일자리를 연결해주는 데 그쳤다”며 “여기에도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노숙자들을 위해서는 한 단계 발전한 숙소와 일자리교육을 제공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인천=진삼열 기자 samu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