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원이 다른 마녀, 그리고 ‘사랑의 키스’ 에 대한 반전… 새영화 ‘말레피센트’
입력 2014-05-29 02:50
‘진정한 사랑의 키스’는 할리우드 애니메이션의 단골 소재다.
‘슈렉’의 피오나 공주는 사랑하는 사람의 키스를 받고도 예전의 아름다운 모습으로 돌아가지 않아 기존 애니메이션의 문법을 통쾌하게 깨뜨렸다. ‘겨울왕국’에서 얼어붙은 안나를 녹인 키스의 주인공은 왕자가 아닌 언니 엘사였다.
앤젤리나 졸리 주연의 판타지 블록버스터 ‘말레피센트’도 역발상이 돋보이는 영화다. 공주가 아닌 마녀를 주인공으로 내세웠고, 사랑의 키스에 대한 반전도 있다.
영화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고전 명작 ‘잠자는 숲 속의 공주’를 비틀었다. 원작에서 갓 태어난 오로라 공주는 마녀의 저주를 받는다. 16세 생일, 물레 바늘에 손가락을 찔려 죽음과도 같은 깊은 잠에 빠지게 된다는 것이다. 잠든 공주를 깨울 수 있는 것은 물론 진정한 사랑의 키스다.
‘말레피센트’도 이 줄거리를 그대로 따라간다. 하지만 영화는 오로라에게 마법을 건 마녀 말레피센트의 시점으로 진행된다. 말레피센트의 어린 시절, 오로라의 아버지인 왕과 그녀와의 관계 등이 드러나면서 왜 그녀가 공주에게 저주를 내리게 되는지가 설득력 있게 그려진다. 뮤지컬 ‘위키드’가 초록마녀의 숨겨진 이야기를 뛰어난 상상력으로 구현해낸 것처럼.
중반부터는 원작과 달라진다. 공주는 인적이 드문 외딴 시골 오두막에서 길러지는데, 정작 공주에게 가장 관심 있는 이는 아이러니하게도 말레피센트다. 오로라를 괴롭히려고 호시탐탐 지켜보는 중인데 막상 가까이 있다보니 귀여운 모습에 빠져들게 된 것. 소녀가 된 오로라역시 말레피센트의 정체를 모른 채 ‘수호천사’라며 따른다. 둘 사이가 돈독해질수록 말레피센트의 후회도 깊어간다. 하지만 이미 걸린 마법은 그녀조차도 풀 수 없다.
영화에서 단연 눈에 띄는 것은 말레피센트와 딱 들어맞는 졸리의 연기다. 그는 거대한 뿔, 스치면 베일 듯 날카로운 광대뼈, 매혹적인 붉은 입술로 시선을 압도한다. 졸리 특유의 카리스마와 뇌쇄적인 웃음, 기품 있는 몸짓은 말레피센트를 지금까지의 마녀와는 차원이 다른 캐릭터로 만들었다.
이 영화가 데뷔작인 로버트 스트롬버그 감독은 ‘아바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미술감독 출신. 두 영화에서 환상적인 세계를 그려내며 2년 연속 아카데미 미술상을 수상한 시각효과의 선두주자다. 그래서인지 이 영화에도 전작들에 버금가는 신비로운 생명체가 등장해 초현실적인 분위기를 더한다. 오로라 역은 할리우드 배우 다코타 패닝의 동생인 엘르 패닝이 나온다. 오로라의 아역으로 졸리의 친딸 비비안이 나오는 장면도 놓치지 말 것. 29일 개봉. 12세가.
한승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