女優들 변했다… 기존과 다른 캐릭터 ‘용감한 도전’ 나선 여배우들
입력 2014-05-29 02:50
고여 있지 않고 새로운 것에 도전한다. 변신하지 않으면 살 수 없다.
기업 혁신 이야기가 아니다. 요즘 한국 여배우들의 자세다.
그들의 이유 있는 변신이 관객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고 있다.
역할의 크고 작음을 가리지 않고 안 해본 것에 용감하게 도전하는 여배우들.
그들의 활약이 한국영화 여성 캐릭터의 스펙트럼을 넓히고 있다.
◇주연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나만의 색깔을 찾을 수 있다면=조여정(33)과 김성령(47)은 새 영화에서 역할의 크기보다는 무엇을 보여줄 수 있느냐에 집중했다.
조여정은 ‘방자전’(2010) ‘후궁: 제왕의 첩’(2012)에서 보여준 노출과 ‘팜므 파탈’의 이미지를 완전히 벗어던졌다. 상영 중인 ‘표적’에서는 화장기 없는 만삭의 임산부로, ‘인간중독’에서는 남편의 승진을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억척스러운 캐릭터로 나온다. 특히 ‘인간중독’에서는 두 남녀주인공을 뛰어넘는 깊은 인상을 남긴다. 조여정은 “주·조연에 대한 개념이 없다”며 “어떤 캐릭터를 할 수 있을까, 또 어떤 걸 하면 새로움을 보여줄 수 있을까가 이번 선택의 포인트였다”고 말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조여정은 ‘방자전’과 ‘후궁’을 선택했을 때의 과감함 못지않게 이번 신작 두 편에서도 새로운 변신에 성공하며 능숙한 캐릭터 소화력을 과시했다.
‘표적’의 김성령은 20여년 연기인생에서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여형사로 짧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형사반장을 맡은 그는 사십 대 후반의 나이에도 절도 있는 액션과 카리스마를 보여줬다. 조은지와 함께 여형사끼리의 근사한 동료애도 선사했다. 류승룡 유준상 진구 등 쟁쟁한 배우들 사이에서도 그의 변신은 단연 눈에 띄었다. 김성령은 이 영화로 올해 칸국제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리닝 부문에 초청돼 레드카펫을 밟는 영광도 얻었다.
◇독립·예술영화 가리지 않는다. 시나리오만 좋다면=배두나(35)처럼 매 작품마다 다른 캐릭터를 보여주며 연기의 스펙트럼을 넓혀온 배우도 드물다. 봉준호 감독의 ‘괴물’(2006)이나 워쇼스키 감독의 할리우드 영화 ‘클라우드 아틀라스’(2012) 등의 블록버스터에서 탄탄한 존재감을 뿜어냈던 그가 선택한 작품은 신인 정주리 감독의 독립영화. 게다가 노개런티로 출연해 영화계를 놀라게 했다. 배두나는 작품 선택 이유에 대해 “글이 정말 좋았다. 한 줄 한 줄 다 좋았다. 시나리오를 읽고 단번에 오케이 했다”고 말했다.
영화 ‘도희야’에서 배두나는 슬픈 사연을 간직한 채 어촌 마을로 부임한 파출소장으로 나온다. 이곳에서 만난 학대받는 소녀 도희와 독특한 동지애를 보여주는데, 내면 연기가 탁월하다. 원래 연기 잘하는 배우였지만 ‘도희야’에서는 전도연 급으로 도약한 연기로 확실한 인상을 심어줬다. 국내 흥행 성적은 저조하지만, 칸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리닝 부문에 초청된 ‘도희야’로 할리우드에 이어 유럽에서도 자신의 이름을 알렸다.
신민아(30)도 용감한 선택을 했다. 그동안 연기보다는 외모와 이미지로 평가받아온 그는 ‘10억’(2009) 이후 작품으로 장률 감독의 ‘경주’를 선택했다. 장률은 필모그래피의 전부를 예술영화로 채운 감독. 그와 호흡을 맞췄다는 점에서 변신에 대한 남다른 각오를 읽을 수 있다. 신민아는 최근 제작보고회에서 “영화는 5년 만의 도전이다. 그동안 고민이 많았다. 기존에 보여주지 않았던 것을 보여주고 싶은 욕심이 컸다”며 고백했다.
아직 시사회 전이라 연기 평가는 불가능하다. 신민아는 이 영화에서 경주에서 찻집을 운영하는 윤희 역을 맡아 박해일과 호흡을 맞춘다.
전찬일 영화평론가는 “그동안 여배우는 외모로 소비되거나 극중에서 종속적인 역할에 머물러 스스로도 불만이 많았다. 최근 조여정, 김성령, 배두나의 활약은 단연 주목할 만하다. 한국영화가 튼튼해지고 건실해지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고 평했다.
한승주 기자 sj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