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이기수] 담배를 끊고 보니
입력 2014-05-29 02:30
5월 31일은 세계보건기구(WHO)가 제정한 제27회 세계 금연의 날이다. 해마다 맞는 기념일이지만 나는 올해 유독 감회가 남다르다. 아주 힘들게 금연을 실천해온 지 만 3년이 되는, 그야말로 ‘특별한 날’이기 때문이다.
‘딱 한 대만!’ 하고 담배를 피우고 싶었던, 그 숱한 유혹을 뿌리치고 지금까지 ‘나와의 약속’을 잘 지키고 있다고 생각하니 실로 뿌듯하다. 하루 평균 한 갑씩 30년간 손과 입에 붙은 흡연 습관을 버리고 이만큼 버텨온 내가 대견하다. 2011년 1월과 5월, 두 차례에 걸쳐 거푸 담배 끊기에 나설 때만 해도 성공하면 나중에 술 마실 때만 담배를 조금씩 피우자고 마음먹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마음도 접었다. 술 마실 때 역시 담배를 피우지 않는 게 냄새도 덜 나고, 다음날 숙취도 빨리 해소되는 등 좋은 점이 더 많다는 것을 몸소 깨달은 것이다.
담배를 끊어야 하는 이유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발암위험 말고도 많다. 대부분의 흡연자들은 이를 실감하지 못한다. 흡연으로 인한 건강 피해가 수십 년간에 걸쳐 누적된 결과로 나타나기 때문에 당장 피부에 와 닿지 않는 까닭이다. 내가 겪고 보니 금연에 성공하려면 금연 의지가 가장 중요한 듯하다. 의지는 결심만 한다고 생기는 것이 아니다. 왜 금연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동기가 분명할 때 확고해진다.
나의 경우 무엇보다 흡연으로 인한 죄의식과 건강 손실에 대한 두려움을 씻는 게 시급했다. 불과 3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정작 자신은 실천하지도 못하면서 천연덕스럽게 우리 신문 독자들과 주위 사람들에게 몸에 해로우니 담배를 끊으라고 권하곤 했다. 그동안 많이 부끄러웠고 송구스러웠다. 담배를 끊으니 몸과 입에서 나는 악취도 줄었다. 더 이상 간접흡연과 담배꽁초 투기로 인한 눈총을 받지 않게 된 것은 덤으로 얻은 효과다.
더 많은 생일을 맞이하게 된 것 역시 큰 소득이다. 한국금연운동협의회 자료에 따르면 35세에 금연하면 8년, 55세에 금연하면 5년, 65세에 금연하면 3년을 평균적으로 더 살 수 있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나는 담배를 다시 피우지 않는다는 전제 아래 수명을 적어도 5년은 더 연장할 수 있게 된 셈이다. 물론 담배를 끊고 잃은 것도 없지 않다. 비공식 사내 정보를 주워들을 기회가 줄어든 것이다. 담배를 피울 때는 사우 두어 명과 회사 밖 흡연 장소에서 수시로 소통을 하며 이런저런 사내 소식을 얻어들을 수 있었다. 그런데 담배를 피우지 않게 되면서 그 기회가 자동적으로 없어지게 됐다. 하긴 들어봐야 모르는 게 약, 아는 게 병이 되기 일쑤인 ‘카더라 통신’이거나 남 헐뜯는 ‘뒷담화’, 연예인 가십거리가 대부분이긴 했지만.
‘인명(人命)은 재천(在天)’이라는 말이 있다. 건강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한 사람에게 꼭 맞는 말이다. 땀 흘리며 노력하지 않은 농부가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없는 것처럼 건강도 정성을 들여야 좋은 결과를 얻게 된다. “죽고 사는 것은 운명이다. 얼마나 더 살려고 술, 담배 끊고 사나! ○○○을 봐라. 술, 담배 안 했어도 일찍 병사하지 않았느냐. ○○○을 봐라. 술고래에 골초인데도 괜찮지 않으냐”고 항변하는 흡연자들이 있다. 과거 나도 그랬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애써 가리지 않은 사람의 변명일 뿐이다. 무병장수는 과음 및 흡연을 삼가고, 규칙적인 운동과 함께 균형 있는 식생활을 하는 등 상식적인 건강습관을 최선을 다해 지키는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선물과도 같은 것이다.
해마다 5월은 연초의 금연 결심을 실천하는 데 실패한 흡연자들이 다시 금연을 시도하는 때다. 담배를 끊고 싶은가. 그렇다면 지금 당장 몸에 해로운 흡연습관을 버리고 건강한 금연습관 길들이기에 다시 나서길 권한다. 흡연이 백해무익하다는 것을 알면서 금연을 실천하지 않는 것이 문제이지 실패를 거듭하는 가운데서도 계속 금연을 시도하는 것은 문제가 안 된다.
이기수 의학전문기자 ks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