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명진 목사의 시편] 우는자와 함께 울라
입력 2014-05-29 02:38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는 하루에도 수천, 수만 건의 크고 작은 일들이 일어난다. 그 모든 일이 다 하늘의 뜻이라고 말한다. 얼핏 생각하면 일리가 있는 것 같지만 무슨 하나님의 뜻이 300명의 인명을 한꺼번에 죽게 한단 말인가.
무슨 하늘의 뜻이 생때같은 아들딸을 그렇게 데려가는가. 그것은 하늘의 뜻이 아니라 인간의 사악함과 탐욕과 욕심이 빚어낸 비극이요 참사다. 우리의 부주의와 거짓과 착각이 만든 참극이요 살상이다. 이러한 사건사고가 일어날 때마다 천재가 아니라 인재라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번 더 생각해 보면 세상만사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이 있는가. 하늘의 뜻,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면 일어난 사고나 사건에 대해 충분한 설명이 되고 이해가 되는가. 비극의 당사자들에게 진정한 위로가 되는가. 거의가 그렇지 않다. 단지 그 말을 한 사람이 내가 좋아하고 존경하는 사람이기에 위로를 받는 것이지 하나님의 뜻이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거나 정말로 그 뜻을 이해해 위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성경은 ‘우는 자와 함께 울라’고 했다. 말이 필요 없다. 장황한 설명이나 미사여구가 없어도 좋다. 문제의 해답을 내지 못해도 괜찮다. 높은 지위나 권세를 갖지 못하고 많은 물질을 제공하지 못해도 상관없다. 그냥 슬픔을 당해 괴로워하며 심한 고통 속에 있는 그를 부둥켜안고 울어 주라는 것이다. 망연자실 주저앉아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끼고 있는 그들에게 다가가 그들을 껴안고 어깨를 도닥이며, 뜨거운 눈물로 젖어 있는 내 얼굴을 그들의 얼굴과 손등에 부비며 소리 없이 있어 주면 그만이다. 그들의 손등에 떨어지는 찝찔한 액체, 끈적이며 얼굴에 와 닿는 그 뜨거운 한줄기의 눈물이 어떤 천군만마보다 힘이 되고 위로를 줄 것이다.
사랑하는 아들딸을 하루아침에 잃어버린 사람들, 그것도 얼마든지 구할 수 있었던 상황이었는데도 살려내지 못해 가슴에 피멍이 들고 억장이 무너진 세월호 참사 희생자 가족들에게 하나님의 뜻이 있을 것이라고 말해서 위로가 되겠는가. 차라리 한 생명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시며 그 고귀한 생명을 구하기 위해 독생자를 죽이시기까지 할 정도로 사랑하신 하나님께서 인간의 탐욕과 욕심으로 인해 죽은 희생자 때문에 얼마나 슬퍼하며 통곡하실까 생각하며 함께 울어주는 것이 진정한 위로가 아닐까.
성경에 야곱의 네 아내 중 가장 사랑받는 아내였지만 다른 세 아내가 열 명의 아들을 낳을 때까지 자식을 낳지 못해 슬퍼하고 통곡하며 그 누구의 어떤 위로도 받기를 거절했다는 라헬의 이야기가 기록돼 있다.
절망과 좌절의 사람들을 다시 일어날 수 있게 하는 것은 그들의 슬픔 속에 들어와 함께 울어준 저들의 눈물을 희망의 끈으로 붙들고 지팡이 삼게 하는 것이리라. 그래서 성경은 너희는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고 하셨으리라.
<수원중앙침례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