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터미널 화재 뒷수습도 세월호 ‘판박이’… 유족들, 사고 관련 정보 깜깜
입력 2014-05-28 04:01
“사람이 죽어나갔는데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고 있어요. 정부는 도대체 뭘 하는 겁니까?”
경기도 고양종합터미널 화재 희생자 유가족 10여명은 27일 현장감식 현장을 찾아 정부에 강력히 항의했다. 사고 발생 하루가 지났지만 사고 원인은 물론 수사 진행상황, 장례절차 등에 대한 안내가 없었기 때문이다. 화재가 발생한 지하 1층 매장 주인인 CJ푸드빌은 일부 사망자와 부상자들에게 병원비 부담을 떠넘겨 거센 항의를 들어야 했다. 세월호 참사 직후 유가족을 외면했던 청해진해운과 정부의 모습이 ‘판박이’로 재연되고 있는 셈이다.
이번 화재로 사망한 KD운송그룹 고양터미널 이강수 지사장의 유족들은 사고 이후 지금까지 이씨의 사망진단서만 건네받았을 뿐이다. 동생 용철씨는 “형이 병원 도착 전 이미 사망한 상태였다는 사실도 기자가 알려줬다”며 “소방 당국도 고양시도 모두 ‘아무것도 모른다’고 말하고 있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유족들은 27일 오전까지도 이씨의 장례를 치를지조차 결정하지 못했다.
국민일보가 직접 관련 기관에 유가족 지원 정보를 확인해보니 돌아오는 건 온통 ‘떠넘기기’ 식 대답뿐이었다. 일산소방서 관계자는 사고 당일 “우리는 유가족 대응을 하지 않으니 고양시 안전총괄과에 연락하라”고 했다. 고양시 안전총괄과 관계자는 “유가족에게 설명하는 것은 우리 일이 아니다”라고 했다가 다시 전화를 걸어와 “병원마다 유가족 대응을 위해 교육받은 직원 2명을 파견했다”며 말을 바꿨다. 그러나 병원에 나와 있던 시 관계자는 “안전총괄과에서 왜 그런 얘기를 했는지 모르겠다. 처음 듣는 얘기”라고 말했다.
아비규환 속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나온 이성영(78)씨 가족들은 사고 당일 밤늦게까지 병원에 모습을 비치지 않는 CJ푸드빌에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이씨는 화장실 인근에서 구조돼 병원으로 이송됐다. 그러나 매표소 인근에서 구조돼 다른 병원으로 옮겨진 부인 신복자(72·여)씨는 끝내 숨을 거뒀다. 가족들은 이씨를 신씨가 있는 병원으로 옮기려 했지만 병원 측이 “병원비를 내야 이송이 가능하다”고 말하면서 고성이 오갔다. 아들 규윤씨가 “CJ푸드빌 공사장에서 화재가 나 무고한 사람들이 희생당했는데 지금 병원비까지 부담하라는 것이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CJ푸드빌 관계자는 “경찰 수사 결과를 기다리려다가 너무 늦어질 것 같아 사고 26일 밤 병원들을 찾아 피해자들을 만나 사과하고 보상을 약속했는데 일부 빠진 사람이 있었던 것 같다”고 해명했다.
고양시는 유족들의 불만이 깊어진 27일 오후에서야 최봉순 시장 권한대행을 본부장으로 재난안전대책본부를 구성하고 각 병원에 공무원을 24시간 배치했다.
경찰은 숨진 7명에 대한 부검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의뢰했다. 또 방화구획을 바꾸는 공사가 함께 진행 중이었던 것으로 드러나면서 방화셔터가 아예 없었는지, 설치됐으나 공사 중이라 꺼져 있었는지, 센서 문제로 작동하지 않았는지 등도 조사할 방침이다. 이번 화재로 8명이 숨지고 57명이 부상한 것으로 집계됐지만 부상자 1명은 위독한 상태다.
고양=전수민 기자 suminis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