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쿡기자] 필사의 진화작업 후 소방관 모습… “당신이 있어 우린 행복” 댓글 폭주
입력 2014-05-28 04:01 수정 2014-05-28 15:54
[친절한 쿡기자] 오른손으로 눈을 비비고 있습니다. 왼손엔 생수병 하나가 쥐어져 있습니다. 시커멓게 그을린 손에 물을 부어 닦아봐야 얼굴은 더 더러워질 뿐입니다. 그도 모르진 않을 겁니다.
얼굴 깨끗해지겠다고 이러는 게 아니라는 건 누구나 알 수 있습니다. 한 명의 목숨이라도 더 구하기 위해 화마와 사투를 벌이고 나온 지금, 눈이 너무 퍽퍽하고 쓰라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었겠죠. 소방공무원의 직업적 숭고함이 느껴지는 사진 한 장이 네티즌의 심금을 울렸습니다.
지난 26일 경기도 고양시 고양종합터미널에서 대형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수백 명의 목숨을 집어 삼킨 세월호 침몰사고의 충격이 채 가라앉지 않은 상황에서 멀티플렉스 건물이 시커먼 연기에 휩싸인 장면을 목격해야 했습니다. 화재는 푸드코트, 프랜차이즈 레스토랑 등이 있는 지하 1층에서 발생했고, 방화셔터가 작동하지 않아 순식간에 건물 전체로 유독가스가 퍼졌습니다.
소방당국에 따르면 지하 1층 인테리어 공사 작업자가 화재 발생 사실을 즉각 알리지 않은 것도 피해를 키운 원인이었습니다. 또 한 번의 ‘인재(人災)’였던 겁니다. 27일 오후 기준으로 최소 8명이 사망하고 57명이 다쳤습니다. 위독한 환자도 있어 사망자는 더 나올 수 있습니다.
이런 악조건 속에서 소방공무원들은 27분 만에 불을 껐습니다. 화재가 오래 이어졌다면 더 큰 인명피해가 일어났을 겁니다. 이런 사실은 네티즌에게도 전달됐습니다. 네티즌들은 소방공무원들의 활약상이 담긴 언론보도 사진을 인터넷에 올리며 감동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세월호 침몰사고 구조 과정에서 실망이 컸던터라 마음에 더 와 닿는 것 같습니다.
생수로 눈을 닦고 있는 사진의 주인공은 일산소방서 장항119안전센터 천석기 팀장입니다. 1958년생, 경력 20년이 넘는 베테랑 소방대원입니다. 전화인터뷰라도 해보고 싶었지만 “오늘 근무가 아닌 데요”라는 일산소방서 관계자의 말에 바로 “알겠습니다” 하고 끊었습니다. 기사 몇 줄 욕심에 그의 휴식을 방해해선 안 될 것 같았습니다.
천 팀장뿐이 아닙니다. 사경을 헤매는 피해자를 업은 채 자신도 혼이 빠진 듯한 표정으로 내달리는 다른 소방관의 사진도 보는 이들의 마음을 뭉클하게 하고 있습니다. 매달 생명수당 5만원, 화재진압수당 8만원. 2008∼2012년 순직 소방공무원 35명, 자살자 34명. 전체의 13.9%가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 우울증, 수면장애 위험군. 우리나라 소방공무원의 현실입니다.
한 현직 소방공무원은 “아직도 2교대 근무인 소방서가 허다하다. 큰 불이 나면 구급대원이 불구덩이에 뛰어들 때도 많다”고 말했습니다. 사진과 함께 덧붙인 네티즌들의 글에서는 이 말이 가장 많이 보이더군요. “감사합니다.”
김현섭 기자 afer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