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년 기다린 사랑… 오바마, 메모리얼데이 추념식서 ‘한국전 미망인 순애보’ 소개

입력 2014-05-28 03:48

지난해 12월 20일 새벽 미국 로스앤젤레스 공항에서는 미군 의장대가 도열한 가운데 숙연한 행사가 열렸다. 의장대 병사들이 막 도착한 수송기에서 성조기에 덮인 관을 조심스럽게 들어 내렸다. 6·25전쟁에서 실종된 지 63년 만에 고향 땅을 밟는 조지프 갠트 미군 중사의 유해였다.

그를 맞이한 이는 미망인 클래라 갠트(96) 여사였다. 갠트 여사는 울먹이며 “남편은 ‘나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재혼하라’고 했지만 나는 ‘노(No), 노’라고 했다. 나는 지금도 그의 부인이다”고 기자들에게 말했다. 그러면서 “60여년 만에 그의 유해가 귀향한 것은 축복이며, 이렇게 그를 맞이하게 돼 나는 정말 행복하다”고 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26일(현지시간) 메모리얼데이(우리의 현충일) 추념식에서 “우리는 전사자 배우자들의 사랑에서 또한 힘을 얻는다”며 갠트 부부의 ‘러브 스토리’를 특별히 소개했다. 갠트 중사의 유해가 고향에 도착했을 때도 전 세계 언론의 많은 관심을 받았었다.

이들 부부는 1946년 텍사스에서 로스앤젤레스로 오는 열차에서 만나 사랑에 빠져 1948년 결혼했다. 이후 6·25전쟁에 참전한 갠트 중사는 1950년 12월 군우리 전투에서 북한군에 포로로 잡혔고 포로수용소에서 1951년 사망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조지프가 실종되자 클래라는 남편의 귀환을 맞기 위해 살던 집에서 무려 63년을 기다렸다. 그러는 사이 우리(미국 정부)는 모든 전쟁에서 실종된 병사를 귀환시키려 노력했다”면서 “지난해 12월 조지프의 유해가 결국 확인돼 영면을 위해 고향으로 돌아왔다”고 강조했다. 이어 “클래라는 63년간 절대 재혼하지 않았고 이제 96세가 됐다”며 “남편의 귀환을 맞으려 끝까지 집을 지켰다”고 부연했다.

이야기를 마친 오바마 대통령이 행사장에 있던 갠트 여사를 가리키자 참석자들은 그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하와이에 본부를 둔 미 국방부 ‘전쟁포로·실종자 합동조사본부’는 북한, 베트남 등지에 묻힌 미군 전사자 유해를 꾸준히 발굴해 미국으로 귀환시키고 있다. 1924년생인 갠트 중사는 1942년 육군에 입대해 2차 세계대전 때 남태평양 전선에서 싸웠으며 동성무공훈장 등을 받았다. 지난해 12월 28일 미군 의장대의 연주 속에 갠트 중사의 유해는 로스앤젤레스 인근 잉글우드에 안장됐다.

워싱턴=배병우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