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오바마 ‘외교업적 無 대통령’ 우려
입력 2014-05-28 02:13
재선에 성공한 미국 대통령들은 새로 시작하는 4년 임기 동안 대외 부문에 더 공을 들이는 경우가 많다. 재임기간이 길어진 만큼 역사에 기록될 업적을 더 크게 의식하게 되는데, 외교 분야가 ‘실적 내기’에 아주 좋기 때문이다. 통상 재임 때 의회 권력이 직전 임기 때보다 야당 쪽으로 더 많이 쏠려 국내 정책에서 ‘돌파구’를 찾기 어려운 점도 대외로 눈을 돌리게 하는 요인이다.
2012년 말 재선에 성공해 임기를 2년 반가량 남긴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예외가 아니다. 하지만 최근 오바마 행정부의 외교정책 어젠다가 잇따라 곤경에 처하고 국제무대에서 미국의 지도력이 시험 받으면서 오바마가 ‘외교업적 제로(0)’ 대통령이 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워싱턴 정가에 확산되고 있다.
우선 동중국해 연합 군사훈련과 중국의 러시아 가스 장기사용 계약으로 더욱 확연해진 중·러 밀착은 오바마 행정부에 ‘뼈아픈 일격’이다. 최근 국민일보 기자와 만난 백악관 관계자도 “(중·러 밀착을) 매우 심각하다고 보지는 않지만 심각하게는 여기고 있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해서도 백악관 외교안보 관계자들은 미국과 유럽의 경제 제재에 러시아가 최소한 ‘움찔’하며 자세를 낮출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아시아·태평양에서 ‘미국이 일방적으로 일본 편만 든다’고 반발해온 중국이 전격적으로 러시아와 손을 잡는 바람에 미국의 당초 계획은 흐트러졌다. 일부에선 냉전 이후 가장 강력한 ‘반미(反美) 블록’이 탄생했다고 평가한다.
외교 전문가들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오바마 대통령의 수(手)와 약점을 정확히 읽고 있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10여년에 걸친 이라크·아프가니스탄 전쟁의 상처 회복을 최우선 대외정책 공약으로 내건 오바마 대통령이 군사적 개입을 최대한 억제할 것이며, 미국의 재정난도 이를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의 외교 스텝이 꼬인 데는 시리아 사태에 대한 무력한 대응이 도화선이 됐다. 오바마 대통령이 ‘금지선’(red line)이라고 수차례 경고한 화학무기가 사용됐음에도 알아사드 정권에 대한 제재를 회피하면서 미국의 적극적 관여(engagement)에 대한 의구심이 커졌다.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영토인 크림반도 합병을 별 주저 없이 실행한 것도 오바마 대통령이 ‘행동’에 나서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이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존 케리 국무장관이 최우선 외교목표로 추진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간 중동 평화협상도 사실상 사망선고를 받았다. 오바마 행정부의 핵심 외교기조인 ‘아시아 중시’ 정책은 일본 변수에 발목이 잡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이 지연되는 등 계속 흔들리고 있다.
존 매케인(애리조나·공화) 상원 의원을 비롯한 의회 강경파들은 오바마 행정부가 ‘무기력·연약 외교’를 하고 있다고 공격하고 있다. 특히 민주당 정부에 우호적인 언론매체들까지 날선 비판을 하고 있다. 뉴욕타임스(NYT) 칼럼니스트 로스 도덧은 지난 17일자 칼럼에서 “심지어 지미 카터 전 대통령도 캠프 데이비드에서 미국·이집트·이스라엘 간 평화협상을 맺는 업적을 남겼다”며 “백악관에 현재까지 오바마 대통령이 이룬 외교적 성취가 뭔지 물으면 말문이 막힐 것”이라고 혹평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28일 미 육사 졸업식에서 자신의 외교노선 비판과 관련한 입장을 밝힐 예정이다.
워싱턴=배병우 특파원 bwb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