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이란 옷’을 입고 광장에 서라
입력 2014-05-28 02:11
광장에 선 기독교/미로슬라브 볼프 지음, 김명윤 옮김/IVP
‘크리스천’이라는 외투를 옷걸이에 걸어두고 공식석상에서 삶의 이상을 말할 수 있을까. 저자는 일상에서 신앙인으로서 정체성을 고민하지 않는다면 그리스도인의 증인이 되기 어렵다고 본다. 기독교를 가슴속에 가두지 말라고 말한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주요 정치 원리로 인식되는 정교분리(政敎分離)에 반대되는 주장이다.
먼저 저자는 크리스천의 잘못된 신앙태도와 기독교의 역사적 잘못을 ‘기능장애’라고 명명하고 비판한다. 1부에서는 이 기능장애를 성찰하고, 2부에서 올바른 신앙인의 태도에 대해 설명한다. 우리는 주일 예배에 참석하는 것만으로 한 주간 잘못을 사함 받는다고 여기고 있는지 모른다. 저자는 이런 크리스천을 ‘카페테리아에서 달콤한 아이스크림만 담고 브로콜리는 담지 않는 사람’에 비유한다. 또 성공하기 위해 돈을 많이 벌고 경쟁에서 이기는 게 최고라고 여기는 것, 원하는 것만 취하는 태도 역시 모두 신앙의 나태함이라고 지적한다. 어떤 의미에서 하나님은 우리 고용주이시다. 우리는 하나님 명령(창 1:28)을 수행하고 하나님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이 땅에 있다(64쪽).
종교의 강요도 기능장애로 본다. 미 9·11테러를 자행한 사람도 종교적 동기로 폭력을 정당화했다. 마크 위르켄스메이어는 ‘신의 마음속에 테러가 있는 것 같다’고도 했다. 혹자는 이슬람교와 기독교의 유일신 사상이 폭력을 부추긴다고 주장한다. 기독교인은 십자가 표지 아래 십자군 전쟁을 일으켰고 극우 무슬림은 폭탄 테러를 일으키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신이 하나라면 모든 사람이 이 신 ‘안’에 있다. 모두 그 ‘안’에서 하나다. 예수는 자신을 내어주는 희생적 사랑을 보여줬다. 폭력과 강요는 예수의 가르침과 반대다. 과거 유럽에서는 인간 번영의 기준을 하나님과 이웃사랑으로 봤다. 하지만 현대로 올수록 사랑의 대상이 축소됐다. 근대엔 보편적 선행, 정치적으로는 공리주의로 변화했고 현대엔 개인주의 자기사랑이 됐다. 하나님을 만유의 주재자이자 거룩한 조물주에서 우주의 치료사이자 신성한 집사 수준으로 이해하게 됐다.
크리스천은 세상을 떠나지 않고 세상 속에서 다르게 살아야 한다(135쪽). 기독교 공동체는 인간의 번영과 공공성을 위해 세상에 참여하고, 기독교 정체성을 말과 행동으로 세상에 투사할 수 있어야 한다. 복음이 삶에서, 인격에서 배어나오게 해야 한다. 다른 종교인을 대할 때는 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눅 6:31)는 말씀대로 해야 한다. 이것이 성경의 황금률이다. 내가 존중받기 원한다면 상대도 존중하란 말이다.
종교인은 공적 사안을 고민할 때 종교적 신념을 떠나선 안 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종교가 대중의 광장을 떠나면 자본주의, 과학주의, 개인주의 등의 세속주의가 광장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정교분리는 이런 관점에서 신앙인에게 불공평하다. ‘다수 공동체의 공존의 정치’를 추구하는 국가는 다양한 인생관을 가진 사람들을 수용해야 한다(178쪽).
이 책은 2001년 9·11테러 이후 미국에서 부상한 ‘문명의 충돌’에 대한 반론일 수 있다. 새뮤얼 헌팅턴은 저서 ‘문명의 충돌’에서 종교 갈등으로 문명의 충돌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미국 주요 정치가들은 당시 이 이론을 테러리즘에 맞서는 기초 이데올로기로 사용했다. 저자는 책 전반에 걸쳐 공존을 강조한다. 배타성과 이중성으로 비판받고 있는 한국 교회에도 이 의견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삶의 방식으로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이 다원화된 사회에서 살아가는 방법이라고 제시한다. 종교가 정치 영역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도 대안을 보여준다. 선동과 단절이 아닌 참여 그리고 논쟁과 투표를 제안한다.
랜들 발머 미 컬럼비아대 종교사 교수는 이 책을 리처드 니버의 ‘그리스도와 문화’ 이후 크리스천과 문화의 관계에 관한 가장 중요한 저서라고 평한다. 크로아티아 출신의 저자는 미 풀러신학교에서 공부하고 독 튀빙겐대에서 위르겐 몰트만 박사의 지도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미 예일대 교수이다. 그가 쓴 ‘배제와 포용’은 미 크리스채너티투데이가 선정한 20세기 100대 종교 서적이다.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