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영 칼럼] 잊혀진다는 것
입력 2014-05-28 02:57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망각은 버려진다는 뜻… 함께하면서 삶의 의미 찾아줘야”
TV 화면에 비친 전남 진도 실내체육관 내부는 휑뎅그렁했다. 빈자리를 찾기 어렵던 그곳은 이제 채워진 자리를 찾기 쉽지 않다. 한때 참척(慘慽)의 고통으로 가득 차 대통령마저 조심스레 발을 들여놓던 곳이었다. 지금은 떠난 자들의 이부자리를 치우지 말아 달라는 남은 자들의 안타까움만 크게 울린다. 300명이 넘던 실종자가 16명으로 줄면서 그 가족들은 세상의 눈길에서 잊혀지지 않을까 불안해한다. 수천명이 북적이던 팽목항과 실내체육관에는 실종자 가족, 취재진, 자원봉사자 등 400여명 남아 있다. 지난 21일 단원고 여학생이 발견된 것을 마지막으로 실종자 수습은 일주일째 ‘0’에 멈췄다. 실종자 가족들은 내 자식이 ‘마지막 1명’이 되는 것이 가장 두렵다고 말한다.
28일로 세월호 참사 발생 43일째. 봄의 절정에 일어난 사고는 섭씨 30도에 육박하는 초여름으로 접어들면서 관심이 식고 있다. 충격의 여진은 약해진 반면 일상으로의 복귀 탄성은 강해졌다.
신문에서도 팽목항과 유가족들 기사는 찾기 어렵고, 지상파 뉴스의 주요 아이템에서도 밀렸다. ‘실종자·희생자·생존자 가족대책위윈회’ 유경근 대변인은 최근 한 추모 모임에서 “무엇을 하든 잊지 말아 달라”고 호소했다. 합동분향소를 찾는 발길도 줄었다. 사고 직후 하루 수만명이 안산의 정부합동분향소를 찾았으나 요즘은 10분의 1 정도다. 전국 시·도의 합동분향소에도 조문객이 뜸해져 철수되는 분향소가 하나둘 늘고 있다.
팽목항에는 일상의 움직임이 확연하다. 지방선거 바람도 항구 초입에 이르렀다. 팽목항으로 가는 길목에는 선거운동원들의 움직임이 부산하고, 임시 배편으로 인근 섬에 유세를 떠나는 선거차량이 들락거린다는 보도가 있다. 범정부사고대책본부는 26일부터 실종자 가족, 기자, 자원봉사자들에게 사전투표 안내를 시작했다. 40여일 동안 막혔던 조도∼팽목항 뱃길도 오는 30일쯤 열린다. 실종자 가족들은 팽목항에 세웠던 실종자가족대책본부 천막을 옮겨 여객선이 들어올 수 있도록 했다. 6월이면 월드컵 열기가 대한민국을 뒤덮는다. 전에 비해 범국민적 차원의 거리 응원은 뜸하겠지만 그 분위기는 세월호 참사를 잊게 하기엔 충분할 것이다.
언제까지 슬픔만 안고 살 수 없다. 평소의 삶으로 돌아가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유가족들에게 망각의 공포를 안겨줘서는 안된다. 이들에게 잊혀진다는 것은 버려진다는 의미다. 미국 뉴욕대학 정신과 부교수를 지낸 제임스 휘트니 힉스는 저서 ‘내 마음이 보내는 50가지 이상신호’에서 “(가까운 사람을) 잃은 슬픔을 경험한 3명 중 1명 정도가 우울증을 겪으며 특히 심한 죄책감에 시달리거나 자신을 무가치하게 느끼면 자살 충동에 빠진다”고 설명했다. 그는 “지역 공동체를 중심으로 한 사회적 연결고리를 통해 자신들을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늘 확인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잊혀지는 것이 특히 힘든 사람들이 있다. 추모공원에 안치되지 않는 등 죽어서도 차별받는 일반인 희생자 가족들, 보험금과 퇴직금 보상에서 제외되는 단원고 기간제 교사 가족들, 집중 수확기인 4∼6월에 미역, 멸치, 꽃게, 다시마 등 지역 대표수산물을 손놓고 바라보는 진도 주민들, 하루하루 떨어지는 매출에 힘들어하는 영세 자영업자 등이다.
지난 13일부터 팽목항에서 세월호 관련 기록을 모으고 유가족들을 보듬어 온 김익한 명지대 기록정보과학대학원장은 정신과의사, 심리치료전문가 등과 함께 앞으로 5년 이상 안산에 머물면서 피해자들에게 삶의 의미를 찾아주는 ‘공동체 복원운동’을 펴겠다고 했다. 이들은 안산에 거주할 집을 찾고 있는 중이다. 사회적관계망(SNS)친구인 그는 며칠 전 페이스 북에 이런 글을 올렸다. “안산으로 돌아가 아카이브를 만들고 세월호 커뮤니티 운동을 펼치겠다. 5년, 10년이 지나 가족들의 얼굴에 미소가 번지는 그날을 보고야 말겠다.” 세월호를 잊지 않겠다는 이들의 움직임이 반갑다.
정진영 논설위원 jy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