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성기철] 대법관 전관예우
입력 2014-05-28 02:43
‘딸깍발이 판사’로 알려진 조무제(73) 전 대법관은 1993년 공직자 첫 재산공개 당시 6400만원을 신고했다. 공개 대상 고위 법관 103명 중 꼴찌였다. 98년 대법관이 됐을 때도 신고 재산은 7200만원에 불과했다. 본가가 부산인 그는 대법관 시절 전세보증금 2000만원짜리 원룸에 살면서 대중교통을 이용했다. 2004년 대법관 퇴임과 동시에 낙향, 모교인 동아대에서 석좌교수를 맡아 지금까지 후진을 양성하고 있다.
대구·부산지역 향판(鄕判) 출신인 배기원(74) 전 대법관도 2005년 퇴임 직후 대형 로펌 고문직 유혹이 있었으나 깨끗이 단념하고 모교인 영남대 석좌교수직을 택했다. 요즘 서울의 한 구청에서 무료 법률상담을 하고 있다. 두 사람은 대법관을 지낸 뒤 엄청난 수입이 보장된 로펌행이나 변호사 사무소 개업을 하지 않은 대표적인 인물이다. 청렴 법조인의 상징이다.
지난해에는 김능환 전 대법관이 중앙선관위원장에서 퇴임한 뒤 부인이 운영하는 편의점 일을 도우면서 신선한 충격을 줬으나 불과 6개월 만에 로펌에 들어가 아쉬움을 남겼다. 현재 서울지역에서 로펌에 소속돼 있거나 변호사 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는 전직 대법관은 37명인 것으로 집계됐다. 변호사 일을 하지 않고 대학 강단에 선 사람은 조·배 전 대법관과 김영란(서강대) 차한성(영남대) 전 대법관 정도다. 재물에 초연한 사람들이 아닐까 싶다.
이용훈 전 대법원장은 2005년 국회 인사청문회 때 대법관 퇴직 후 5년간 60억원의 소득을 올렸다고 신고해 전관예우 논란을 빚었다. 그 사이 몸값이 많이 올라서일까. 법조계에 따르면 요즘 대법관 출신 변호사는 3년 동안 약 100억원의 수임료를 받을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관예우가 아니면 상상조차 하기 힘든 액수다. 상고이유서에 사인만 해주면 2000만∼3000만원을 받는다는데 그 동네에선 이를 ‘도장값’이라 부른단다. 참으로 대단한 몸값이다.
국무총리에 내정된 안대희 전 대법관이 10개월간 사건 수임과 법률 자문으로 무려 22억원의 수입을 올린 것으로 밝혀져 야당으로부터 퇴진 압력을 받고 있다. 수입의 사회 환원을 약속했지만 ‘국민정서법’은 냉랭하기만 하다. 공직 임명 가능성을 염두에 두지 않고 무리하게 욕심을 부린 것 같다. 대법관 출신으로 국무총리를 역임한 이회창·김황식 전 총리의 경우 과다 수임료나 전관예우로 논란에 휩싸인 적이 없다.
성기철 논설위원 kcs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