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김영란법’ 처리 미룬 與野 말 못할 속셈 있나
입력 2014-05-28 02:41
불길한 예감은 빗나가는 법이 없다.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이 세월호 참사 주요 원인의 하나로 꼽힌 관피아 적폐를 뿌리 뽑겠다며 제정을 약속한 ‘부정청탁 금지 및 공직자의 이해충돌 방지법(일명 김영란법)’의 5월 임시국회 처리가 무산됐다. 헌법에 위배될 소지가 있다는 이유를 내세워 논의를 후반기 국회로 넘겼다.
100만원 이상 금품을 수수할 경우 직무관련성과 대가성이 없어도 형사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골자로 한 김영란법이 국회에 제출된 때는 지난해 8월이다. 그동안 여야가 거들떠보지도 않다가 세월호 참사 이후 국회 차원의 생색내기용으로 꺼내든 카드가 이 법이다. 진작 김영란법을 만들었다면 관피아도, 세월호 참사도 막을 수 있었다는 여론의 호된 질책에 부랴부랴 입법화 작업에 나선 것이다. 그런데도 이것마저 얼토당토않은 핑계를 대며 지연전술을 펴는 건 여야의 입법 의지를 의심케 한다.
지금까지 정치권이 김영란법 제정에 소극적이었던 이유는 뻔하다. 이 법이 제정되면 상당한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 ‘무노동 유임금’을 다반사로 하는 국회의원에게 하등 달가울 게 없는 법이다. 지난해 말 대통령 친인척과 고위공직자의 권력형 비리를 근절하기 위해 특별감찰관제를 도입하기로 했을 때 “3권분립 원칙에 위배된다”며 감찰대상에서 국회의원을 제외했던 정치권이다.
구우일모라도 정치권이 세월호 희생을 헛되게 하고 국민의 바람을 저버리는 파렴치한 짓은 하지 않을 것으로 믿는다. 여야의 법안 심의과정을 보면 일단 그럴 가능성이 희박해 보이기는 하다. 국회 정무위 법안심사소위가 법 적용범위를 국회, 법원, 헌법재판소, 중앙행정기관, 공직유관단체, 공공기관, 국·공립학교 종사자로 규정한 정부안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사립학교, 사립유치원, 언론까지 확대했기 때문이다. 세월호 민심을 제대로 읽었다.
큰 틀의 합의는 이뤄졌다. 잠정안에 따르면 직접 대상자는 186만여명, 가족까지 포함할 경우 560만∼1780만여명이 이 법의 적용을 받는다. 보다 완벽한 법을 만들기 위해 입법을 늦추기로 한 이상 법의 본래 취지와 다르게 엉뚱한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아울러 입법 장애요인으로 지적된 국민의 직업선택권, 청원권, 민원제기권 침해 우려도 말끔히 해소해 제대로 된 완벽한 법안을 내놓아야 한다. 그래야 국민들도 입법을 미룬 정치권의 참뜻을 받아들일 것이다.
분명히 짚어야 할 것은 정치권이 지금은 국민정서를 의식해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지만 세월호의 비극이 국민의 뇌리에서 점차 잊혀지면 김영란법을 모른 체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정치권은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이익집단이다. 국민이 두 눈 부릅뜨고 지켜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