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義人들 있어 그나마 희망을 말할 수 있다

입력 2014-05-28 02:31

“입사한 지 얼마 안 된 여직원이 저 시커먼 연기 속에서 사경을 헤맬 것으로 보이는데 어찌 나 혼자 대피할 수 있겠는가.”

26일 경기도 고양시외버스종합터미널 화재로 숨진 이강수씨는 이 터미널 운영 회사인 KD운송그룹 고양지사장이다. 불이 날 당시 그는 사무실에서 직원 3명과 회의 중이었다. 부임한 지 채 한 달이 안 된 그는 불이 나자 갓 입사한 여직원을 구하기 위해 연기 속으로 뛰어들었다. 평소 책임감이 강했던 이씨는 질식해 숨진 상태로 지상 2층 매표소에서 발견됐다. 이씨가 그토록 구하려던 매표소 여직원도 숨져 안타까움은 더했다.

화마(火魔)를 무서워하지 않고 현장에 뛰어들어가 노인을 구한 의인도 있었다. 일산 백석 와이시티(Y-City) 신축공사장에서 근무하는 요진건설 오영석 과장은 화재 현장에서 탈출하지 못하던 할아버지 1명을 구해냈다. 오씨는 100m 떨어진 곳에서 직원들과 회의를 하던 중 터미널에서 시커먼 연기가 솟아오르자 곧바로 현장에 달려가 2층 난간에서 살려 달라고 외치며 기침을 하는 할아버지를 업고 나왔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그는 죽을 수 있다는 공포 속에서도 두 차례 더 건물로 들어가 생존자가 있는지 살피기도 했다.

304명의 사망·실종자를 낸 세월호 참사 때도 의인들이 적지 않았다. 구명조끼를 친구에게 벗어주고 또 다른 친구를 구하기 위해 지하로 내려갔다 사망한 안산 단원고 정차웅군, 최후의 순간까지 제자들을 보듬은 남윤철 최혜정 선생님과 선장이 내팽개친 배에서 마지막까지 승객의 탈출을 돕다 생을 마감한 박지영 승무원, 양대홍 사무장 등등.

세월호 참사에 이어 이번 터미널 화재까지 끊이지 않는 사고로 지금 대한민국은 슬픔에 잠겨 있다. 하지만 사고 때마다 어김없이 빛을 발한 이런 의인들이 있기에 우리는 희망을 말할 수 있다. 이들은 우리 사회가 다시 추스르고 일어날 수 있게 하는 힘의 원천이다. 남을 먼저 생각하는 이들의 희생정신이야말로 안전 불감증에 허덕이는 대한민국을 받치는 든든한 버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