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코너-정원교] 한국, 과연 대단한 나라인가?

입력 2014-05-28 04:01


“한국은 대단해요.” 지난주 베이징 시내 명문대 박사과정에 다니는 중국 학생들과 대화할 기회가 있었다. 만신창이가 된 한국을 칭찬하는 말에 순간 어리둥절했다. 한국을 보는 시각이 이렇게 다를 수도 있다니. 세월호 참사 이후 자신의 환부를 송두리째 수술대 위에 올려놓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는 얘기다. 이를 통해 새롭게 나아갈 수 있는 동력을 찾고 있는 게 부럽다고도 했다.

“한국 대통령은 사과를 몇 번이나 해야 하는 거죠?” 우리의 국회 격인 전국인민대표대회의 부위원장 중 한 명은 이런 반응을 보였다. 한국에서는 국민의 이해를 구하는 일이 왜 그렇게 어렵냐는 뜻이었다. 최근 그를 만난 소식통은 “대통령을 계속 흔들어 대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에서 그렇게 말하는 것으로 들렸다”며 “중국 정치 체제에 비춰보면 쉽게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었을 것”이라고 전했다.

한국을 대하는 상반된 생각은 중국 정치 현실을 둘러싼 인식의 차에서 비롯된다. 젊은 세대는 중국 정치의 문제점을, 기성세대는 그 안정성을 먼저 떠올린 결과다. 박사과정 학생들은 “만약 중국에서 세월호 사건이 터졌다면 한국에서처럼 모든 문제가 까발려졌을까”라고 자문했다. 고심할 것도 없이 ‘불가능’이라는 답을 내놓았다. 그들은 언론 자유나 사법권 독립이 보장돼 있지 않은 사회에서 느끼는 답답함을 토로했다. 한국을 눈을 비비면서 보는 까닭도 여기에 있었다.

고위관리의 발언은 비록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긴 했지만 중국에서라면 정국 혼란을 초래할 정도로까지 상황이 전개되지는 않았을 것이란 의미를 담고 있었다. 공산당이 주도하는 체제에서는 그렇게 되도록 내버려둘 리도 없기 때문이다. 중국 정치 시스템에 익숙한 그로서는 당연한 말을 한 것일 수도 있다. 어느 쪽 견해가 더 타당한 것일까. 중국 정치에서 가장 큰 특징은 안정과 효율이다. 공산당의 집권을 해칠 수 있는 상황은 어떤 경우에도 용납되지 않는다. 정치적 안정은 최우선 과제다. 따라서 10년 주기로 당 지도부가 바뀌는 ‘권력 교체’만 있을 뿐 ‘정권 교체’라는 단어는 존재하지도 않는다.

14억 가까운 인구에다 14개국과 국경을 접한 광활한 영토를 가진 국가인 만큼 일단 혼란이 야기되면 걷잡을 수 없게 된다는 걸 당 지도부는 역사를 통해 잘 알고 있다. 서방국가들이 아무리 일당 독재라고 떠들어도 “무책임한 소리 하지 말라”며 ‘중국특색 사회주의’를 내세우는 건 이 때문이다.

하지만 효율 우선은 그동안 숱한 부작용을 불러왔다. 당이 결심하면 웬만한 절차는 무시되기 일쑤였고 그 과정에서 환경 파괴나 인권 침해는 다반사로 벌어졌다. 이제 효율만 앞세워선 치러야 할 대가가 너무 크다는 걸 깨닫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체제 내에서 공산당을 견제할 세력이 없다는 사실은 결정적인 맹점으로 꼽힌다. 당이 입법, 사법, 행정권은 물론 언론까지 틀어쥐고 있으니 고인 물은 썩을 수밖에. 이러한 토양에서는 ‘세월호 사건’이 벌어져도 국가 차원의 반성과 그에 따른 대안 제시로 이어지기는 쉽지 않다는 게 학생들의 지적이다.

과연 한국은 그들이 부러워하는 것처럼 혼란스러운 듯하지만 그 속에서 새 출발을 할 줄 아는 나라일까. 그 답은 앞으로 우리가 제시해야 할 시대적 과제로 남았다. 이를 위해선 지난 한 달여 동안 보여준 것 이상으로 눈을 부릅뜨고 깨어 있어야 한다. 철저한 반성만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이다.

베이징=정원교 특파원 wkch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