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홍하상] 청일전쟁 120주년과 세월호

입력 2014-05-28 02:22


철저하게 준비한 일본 해군

오는 7월 25일은 청일전쟁이 발발한 지 꼭 120년이 되는 해이다. 일본은 청나라와의 전쟁에 대비해 이미 전쟁 발발 16년 전인 1878년 오카와 마타지 대령을 청나라 베이징 주재 무관, 즉 스파이로 파견해 청나라가 가지고 있는 전 해군력을 조사했다. 그리고 1893년 다시 한 번 오카와를 파견해 해군력의 증강 여부를 조사했다. 오카와는 청나라 해군력은 독일 크룹 철강이 만든 아시아 최대의 거함 7335t의 정원, 진원함을 빼놓곤 모두 고철덩어리에 불과하다고 보고했다.

이토 히로부미는 그러한 첩보를 바탕으로 개전에 들어갔고, 경기도 안산 대부도 앞에 있는 풍도 앞바다에서 첫 함포전이 시작됐다. 양국의 해군은 상대의 전함에 포탄을 쏟아부었다. 일본 해군의 함포는 청나라 군함을 명중시켰고, 청나라 해군이 쏜 포탄도 일본 전함에 날아와 꽂혔다. 한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일본 해군이 쏜 포탄을 맞은 청나라 함대들은 모두 전투력을 상실한 채 비실댔으나 청나라 함대의 포를 맞은 일본군함은 별 이상이 없었다.

청나라 전함이 쏜 포탄 중에는 진흙을 구워서 검은 칠을 한 후 그 속에 콩깻묵을 넣은 아주 이상한 것이었다. 관리들이 부패해서 실전에 써야 할 쇠를 모두 떼먹었기 때문이다. 거기에다 해군의 상당수가 훈련받지 않은 농민, 죄수 등 얼치기들이 대부분이었다. 게다가 청나라는 서태후가 해군력 증강에 사용해야 할 돈을 베이징의 이화원 건설에 다 써버렸다.

“청국은 독일에 와서 최신 전함을 사가지고 가는 것이 목표였으나 일본은 독일에 와서 제도와 시스템을 배우고 갔다.” 독일의 철혈재상이었던 비스마르크가 한 말이다. 청나라 실권자였던 리홍장이 청일전쟁에 대비해 아시아 최대의 전함인 정원, 진원을 발주하러 갔을 때 비스마르크는 이 큰 고객에게 감사의 표시로 자신이 애지중지 기르던 명견 두 마리를 선물로 주었다. 그리고 2년 후 그 배를 인수하러 간 리홍장에게 “제가 드린 개는 어떠셨습니까”하고 물었다. 그러자 리홍장은 “예, 참 맛있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이걸로 청나라와 독일의 외교관계는 완전히 금이 가버렸다.

비스마르크는 평생 두 번 울었다고 한다. 한번은 아내인 안나가 죽었을 때이고, 또 한번은 자신이 평생 기르던 개 술탄이 죽었을 때이다. 잘 기르라고 준 개를 잡아먹어 버렸으니 비스마르크는 절망했다. 청나라는 외교에서도 실패했다. 결국 청나라는 전쟁에 졌고, 시모노세키 춘범루에서 항복문서에 조인했다. 전쟁배상금으로 은화 2억냥을 토해냈고, 대만, 여순반도, 팽호 열도를 일본에 떼어줬다. 은화 2억냥은 청나라의 3년 치 국가예산이었다.

시스템 잘 갖춰 살아남아야

이로써 청나라는 확실하게 망했고, 일본은 청나라로부터 받은 전쟁배상금 중 46%를 해군력 증강, 16%를 육군력 증강에 투입해 러일전쟁을 준비했고, 거기서도 또 이겼다. 러시아의 발틱 함대에 승선한 해군의 절반이 죄수 출신이었다. 요즘 중국은 청일전쟁의 패배에 대해 해군 지휘관들이 다시 학습에 들어갔다. 일본도 청일전쟁 120주년 특집을 대대적으로 다루면서 중국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센카쿠열도의 영유권 문제로 중국과 일본은 날로 전쟁 수위를 높이고 있다.

올 연말이 되면 구매력평가(PPP) 기준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은 미국을 앞질러 세계 1위로 올라설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일본은 두 나라에 이어 세계 3위를 고수하는 반면 한국은 15위권에 머물 것이라고 한다. 한국은 GDP, 인구수 등 모든 것이 중국, 일본에 비해 열세이다. 한국은 중국과 일본의 사이에 껴 지난 1500년을 살아왔다. 향후 우리가 열강 속에 살아남으려면 제도와 시스템이 철저해야 한다. 그것이 세월호 사건이 가르쳐준 교훈이다.

홍하상 논픽션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