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조 섹시 디바 김추자, 33년만의 컴백

입력 2014-05-27 16:39


새마을 운동 시대, 반공주의가 횡행하던 엄혹한 시절, 김추자(63)의 등장은 충격이었다. 그녀는 몽환적이고 허스키한 음성으로 노래를 부르며 무대에서 격렬하게 엉덩이를 흔들었다. 우리나라 여가수로는 처음이었다. 트레이드마크인 떨림이 묘한 콧소리와 육감적인 댄스로 1970년대를 풍미했던 가수 김추자. 81년 은퇴 후 베일에 가려져 있던 그가 돌아왔다. 33년 만이다.

‘1970년대 이효리’, 한국 록의 대부 신중현 사단의 간판스타, 우리나라 댄스 음악의 최초 아이콘. 김추자를 일컫는 수식어는 많다. ‘늦기 전에’ ‘커피 한 잔’ ‘거짓말이야’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 ‘님은 먼 곳에’ 등 중장년층이 환호하고, 젊은 세대도 한번쯤 들어봤음직한 히트곡도 다수다.

27일 서울 을지로 롯데호텔서울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그를 만났다. 김추자는 특유의 ‘사자 머리’에 검정색 정장 차림이었다. 목소리에는 에너지와 열정, 자신감이 넘쳤고, 말투에는 가식이 없었다.

◇집에서 큰 거울보며 노래와 춤 연습=그는 “33년 만에 나왔다. 그동안 살림하고 애 키우며 평범하게 살아왔지만 이날을 기다리느라 많이 노력했다”며 “흥분된다. 새로운 앨범 제작에 심혈을 기울였다”고 말했다. 이어 “돌이켜보니 무대에 서서 관객에게 박수 받고 환호성을 들었던 때가 가장 행복했다. 그 맛에 노래를 불렀다. 당시 ‘간첩설’ 등에 시달리며 연예계 활동에 정이 떨어져 은퇴하게 됐다”고 털어놓았다.

“이어진 결혼 생활은 행복했고, 더 늦기 전에 나를 팬들에게 목소리를 들려주고 싶은 마음에 나왔다”며 “가족(남편과 딸)이 다시 해보라고 많이 격려해줬다. 집에서도 음악을 놓지 않고 살았다”고 말했다.

그는 “내 노래는 몸을 움직여야 나온다. 표정과 연기도 따라줘야 한다. 마치 배우가 연기하듯이 불러야 노래가 나온다. 보기 싫지는 않았던 것 같다. 곧 잘했네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전했다. 김추자는 이번에도 예전처럼 노래에 맞춰 엉덩이를 흔들거냐는 질문에 “당연히 흔들어야죠”라고 시원하게 답했다.

◇김추자는 누구=대학시절, 신입생 노래자랑에서 1위를 한 김추자는 노래에 대한 열정 하나로 펄시스터즈를 성공시킨 신중현을 무작정 찾아갔다. 꼬박 한달을 기다린 끝에 통기타로 테스트를 받았고 “탄탄한 목소리와 몸에 배인 현대적인 감각”이라는 찬사와 함께 오디션에 합격했다.

1969년 데뷔한 김추자는 70년대를 통틀어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가수 중 하나다. 한반도 반쪽을 들었다 놨다했을 정도였다. 조용필 서태지에 비견될 만한 김추자 현상이 있었다. ‘담배는 청자, 노래는 추자’라는 말이 유행했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인기였다.

임진모 대중음악평론가는 “당시 대중음악계는 남진 나훈아의 트로트 구도와 최희준 패티김의 스탠다드팝 두 진영이 있었다. 김추자는 이들 사이에 뛰어들어 로큰롤과 소울, 사이키델릭한 노래를 가장 대중적으로 대변한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김추자는 고음 중음 저음이 다 좋은데 댄스까지 가능했던 가수라서 소울 발라드 록 모두 다 능란하게 소화할 수 있었다”고 평했다.

데뷔곡인 ‘늦기 전에’와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는 71년 동명의 영화로 만들어지며 큰 인기를 모았다. ‘님은 먼 곳에’는 2008년 배우 수연 주연의 동명 영화에도 다시 사용되며 화제를 모았다.

1980년 정규 5집 앨범을 끝으로 81년 결혼과 동시에 가수 생활을 돌연 중단했다.

◇33년 만의 새 앨범=과거 김추자가 발매한 LP앨범 이후 처음 낸 CD앨범으로 주로 과거의 미발표곡으로 이뤄져있다. 신중현의 ‘몰라주고 말았어’ ‘내 곁에 있듯이’ ‘고독한 마음’ ‘태양의 빛’ ‘가버린 사람아’ 등 5곡을 비롯해 고(故) 이봉조가 작곡한 ‘하늘을 바라보소’ ‘그리고’, 트로트 작곡가 김희갑의 ‘그대는 나를’, 싱어송라이터 정혜정의 ‘춘천의 하늘’ 등 총 9곡이 수록돼 있다.

임진모씨는 “60년대와 2010년이 공존하는 느낌의 음반이다. 젊은 세대에게는 그 당시 음악의 흔적과 맛을 전해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추자는 최근 새 앨범에 신중현의 곡을 수록하는 데 대해 저작권 관련 계약을 맺고 갈등을 마무리했다. 김추자는 “최근 편찮다는 얘기를 듣고 병원에 찾아 가니 침대에서 맨발로 나와 손을 잡으시더라. 다시 노래 할거라니까 ‘맘대로 불러. 좋은대로 해. 나오면 좋지’라고 격려해주셨다”고 말했다.

그는 ‘디바’로 불리길 원치 않았다. 전설의 가수, 국민적 가수 이런 수식어는 더더욱 싫다고 했다. 그럼 뭐라고 불렀으면 좋겠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냥 김추자요. 한국의 노래 잘 부르는 김추자라고 불러주세요.”

한승주 기자 sj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