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김창준 (16) “이건 LA타임스가 의원님을 총으로 쏜 겁니다”

입력 2014-05-28 02:31


의원에 당선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워싱턴포스트’에 내 기사가 크게 실렸다.

진보 성향의 신문인 워싱턴포스트에서 공화당 초선의원 이야기를 크게 써줬으니 여기저기서 화제가 됐다. 재선을 준비해야 하는 입장에서 신문에 이름이 나는 게 싫진 않았다. 그러나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그토록 호의적이었던 신문들이 내 뒤통수를 노리고 있는 줄은 몰랐다.

7월 초순이었다. 아침부터 어느 젊은 여자가 사무실로 찾아와 기다리고 있었다. LA타임스 기자라며 인터뷰를 요청했다. 반갑게 맞이했지만 그녀의 얼굴에서는 살기가 느껴졌다. 앉자마자 나를 인터뷰한다기보다는 심문을 하는 것처럼 내 모금 운동에 대해 따지기 시작했다. 나는 이런 상황에 익숙하지 않아 그저 있는 그대로 이야기했다. 이튿날 아침, 여느 때처럼 이른 새벽에 일어나 출근하기 전 신문을 펴들었다. 평소 습관처럼 LA타임스 정치면부터 펼쳤는데,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정치면 가득히 ‘김창준 의원이 기업 자금을 선거에 사용한 의혹이 있다’는 기사가 1면부터 3면까지 도배돼 있었다.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쇠망치로 뒤통수를 강하게 얻어맞은 듯 멍했다. 서둘러 옷을 갈아입고 출근했다. 사무실로 들어서자 모두들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이건 말도 안 되는 기사입니다. 의원님이 언제 회사 자금을 쓰셨나요? 회사 건물에 빈 사무실이 있어서 선거 사무실로 썼을 뿐인데 도대체 무엇이 불법이라는 겁니까. 이건 명백한 모함입니다.” 신문 기사에 대한 성토가 이어졌다.

“애초부터 LA타임스가 의원님을 노리고 시작한 겁니다. 의원님이 등원 첫날부터 민주당을 공격하신 게 결정적이었어요. 이건 LA타임스가 의원님을 총으로 쏜 겁니다. 소리 나지 않는 총이라도 총은 총이지요.” 선거캠페인 매니저인 밥 가우티도 거들었다.

핵이 분열되면 중성자가 나온다. 그 중성자는 옆에 있던 다른 중성자와 부딪히면서 연쇄폭발을 일으킨다. 이것이 핵폭발의 원리다. LA타임스가 한 건 터뜨리면 그 기사를 지역신문에서 받아 키우고, 또 기사를 받아 교포신문에서 부풀리는 일이 연쇄 반응으로 일어났다.

의혹이 불거지자 미 연방수사국(FBI)에서 수사를 시작했다. 수사관들이 제이 킴 엔지니어스의 모든 회계장부와 컴퓨터를 샅샅이 뒤졌다. 회사는 쑥대밭이 됐다. 나는 신문보도가 나간 지 한 달쯤 지나 반박 자료를 내놨고, 언론과 인터뷰를 가졌지만 논란은 가라앉지 않았다.

특히 임대료 문제가 계속 발목을 잡았다. 비록 내 건물에 사무실을 얻었더라도 단돈 1달러라도 임대료가 오고간 거래내역이 없으면 미국 선거법에 어긋난다는 것이었다. 미 연방선거법이 그만큼 까다롭다는 걸 나는 미처 몰랐다. 선거운동에만 몰두했지 선거법에는 별 신경을 안 썼는데, 다른 의원들은 다 아는 미국 선거법을 나 혼자만 몰랐다는 사실이 나를 깊은 절망감 속으로 빠트렸다. 내가 내 건물에 내 선거사무실을 내면서, 내가 건물 주인인 나한테 임대료를 건네고 영수증을 끊어줘야 한다는 미국법을 내가 어찌 알았겠는가. 무엇보다 선거관리위원회에 보고하지 않은 것이 화근이었다.

이런 일이 터지자 모금을 가장 많이 해주던 중국인들의 후원이 끊겼다. ‘사흘이 멀다’ 하고 신문들이 선거자금 의혹에 대해 떠들어대는데 누가 후원금을 내겠는가. 10만 달러를 목표로 모금 운동을 펼쳤지만 모금액은 1만3000달러에 그쳤다. ‘제이 킴도 이젠 끝났다’라는 말들이 나돌기 시작했다.

아무리 설명을 해도 점점 더 의혹만 커질 뿐 내 얘기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은 없었다. 생전 처음 당하는 일이라 너무 기가 막혀 어떻게 해야 좋을지 막막할 따름이었다.

정리=박재찬 기자 jeep@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