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 뒷전 공사판… 도심 곳곳에 세월호 있다

입력 2014-05-27 04:08

‘안전 불감증’이 낳은 인재(人災)는 대체 언제 끝날 것인가. 26일 오전 9시2분 경기도 고양시 고양종합터미널에서 화재로 최소 7명이 숨지고 54명이 다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불은 27분 만에 꺼졌으나 안전 권고 규정을 무시하고 현장 곳곳에 놓아둔 가연성 물질과 부실한 대피시설 때문에 인명 피해가 커져 또다른 인재라는 지적이 나온다. 고양종합터미널은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정부 당국이 전국 주요 시설에 대해 실시하고 있는 ‘총체적 안전점검’ 대상에서도 제외됐던 것으로 확인됐다. 정부의 안전점검 자체에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공사 현장의 주먹구구 안전관리=소방 당국에 따르면 사상자 대부분은 유독가스를 마시고 피해를 입었다. 중상자 일부는 생명이 위독한 것으로 알려져 사망자는 늘어날 가능성이 남아 있다. 불이 시작된 지하 1층 푸드코트에선 음식점 인테리어 공사를 하고 있었다. 경찰은 용접작업 중 가연성 자재 등에 불꽃이 튀어 불이 번진 것으로 추정하고 가스 배관과의 연관성 등도 조사하고 있다.

공사 현장에는 불이 잘 붙지 않는 불연성 자재를 써야 하지만 많은 경우 값이 싸다는 이유로 난연(難燃) 처리가 되지 않은 샌드위치 패널과 우레탄폼 등 가연성 자재를 선호한다. 지난해 11월 2명이 숨진 서울 구로구 고층 복합건물 공사 현장에서도 공사비 절감을 위해 쓴 가연성 샌드위치 패널에 용접 불꽃이 옮겨붙어 순식간에 유독가스가 퍼졌다.

공사 현장 인부들은 대부분 일용직이다. 업무를 마무리하는 데 급급해 안전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 점심시간 등을 이용해 안전교육을 실시하는 경우도 있지만 교육 효율은 낮다. 안전관리자가 필수지만 현장에서는 안전관리자를 찾기 어렵다.

이날 구로구의 한 주택 건설 현장에서는 인부들이 가연성 자재가 널려 있는 공사장에서 버젓이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안전관리자가 있느냐”고 물으니 “모른다”는 답이 돌아왔다. 인부 김모(54)씨는 “새벽같이 나오다 보니 피곤해서 이런저런 사고가 나는데 소규모 현장은 안전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안전관리자가 있어도 인부들까지 신경 쓰지는 않는다”고 했다.

◇이윤 추구에 뒷전으로 밀린 안전 규정=공사 현장의 안전 불감증이 이어지는 이유는 안전 규정이 민간 자율에 맡겨져 있기 때문이다. 이명박정부에서 이런 식의 규제 완화가 급속히 진행됐다. 사업장마다 공사비 절감을 위해 안전관리 비용과 노력을 최소화하고, 하청을 거쳐 계약직으로 고용되는 안전관리자들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전국건설노동조합 관계자는 “공사비가 120억원 이상인 건설 현장은 반드시 안전관리자를 선임토록 돼 있지만 문제는 이들이 계약직이라는 것”이라며 “계약직 안전관리자는 회사 눈치를 보기 때문에 문제를 제대로 지적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나마 소규모 공사 현장은 계약직 안전관리자조차 없다.

하청이 반복되는 과정에서 안전관리 비용은 더 줄어든다. 건설노조 박종국 노동안전보건국장은 “공사 안전관리 분야는 원청에서 하청, 다시 재하청이 이뤄지는 식”이라며 “비용을 줄이는 식으로 하청이 반복되면 안전에 쓰는 돈은 더 줄어든다”고 설명했다. 최윤철 청운대 건축설비소방학과 교수는 “안전근로자 실명제를 도입하고 안전사고 발생 시 불이익을 주는 등 제재를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부경 황인호 조성은 기자 vicky@kmib.co.kr